올해 초는 말처럼 한 해를 멋있고 힘 있게 살아보자는 신년 인사가 곳곳에서 들립니다. 병오년이 말띠 해이기 때문이죠. 말을 생각하면 말을 탄 영웅, 경마장의 말, 마차, 그리고 초원을 달리는 얼룩말 등이 떠오릅니다. 말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거예요. 자유로운 야생마와 마구간에 묶인 길들인 말입니다.
말은 자유로운 본성을 지니고 있어서 인간의 도움이 없어도 자연에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동물이에요. 하지만 튼튼하고 성품이 순해서 오래도록 인간과 함께해 왔어요. 사람들은 채찍으로 말을 길들여 말 등에 타거나 무거운 짐을 실어 옮기게 했어요. 말발굽에 편자(U자 모양의 쇳조각)를 박아 하루 종일 마차를 끌게도 하고요. 말을 이동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죠.
오늘은 말의 해를 맞아 말에 애정을 가지고 그림을 그린 화가들을 찾아보고, 말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림을 살펴보겠습니다.
명마(名馬) 초상화
18세기 말에 활동한 영국의 조지 스텁스(1724~1806)는 30년이 넘도록 말을 그린 말 전문 화가예요. 그는 살아 있는 말처럼 생생하게 그리려고 부단히 노력했는데요. 죽은 말을 해부한 것을 관찰하며 근육과 혈관 모양을 공부했고, 수시로 연습 스케치를 했습니다. <작품 1>은 스텁스가 그린 ‘휘슬자켓’이에요. 휘슬자켓은 경주에서 우승한 말의 이름으로, 말 주인의 요청을 받아 그린 것입니다. 이 그림은 사람이 아닌 말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당시 획기적인 ‘말 초상화’였죠.
작품 ‘휘슬자켓’에는 스텁스의 풍부한 동물 해부학 지식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안장을 얹지 않아서 사람으로 치면 벗은 몸처럼 근육이 잘 표현돼 있어요. 마치 보정한 사진처럼 연습과 경기로 생긴 상처나 흠집이 전혀 눈에 띄지 않고, 반질반질 윤기 있는 털을 가진 완벽하게 아름다운 자태로 등장합니다. 말의 모습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경은 사진관처럼 아무것도 없이 어두운 단색으로 칠해져 있어요. 말을 사람의 초상화 형식에 맞추어 그린 것입니다.
<작품 2>는 가젤이라는 이름의 백마를 그린 ‘백마 가젤’입니다. 이 말의 주인이자 화가인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1864~1901)는 프랑스에서 손꼽힐 만큼 이름 있고 부유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부모의 큰 기대를 받으며 자랐어요. 하지만 선천적으로 뼈가 약했던 그는 열 살 무렵부터 연이은 골절로 고생했고 곧 성장이 멈추고 말았습니다. ‘백마 가젤’은 로트레크가 열일곱 살 되던 해에 그린 거예요.
그가 남들처럼 건강하게 자랐더라면 이 잘생기고 우아한 흰 말의 등에 올라타 마음껏 바람을 맞으며 달렸겠지요. 하지만 빗장으로 잠겨 갇혀 있는 이 말은 달리지도 못하고 마냥 주인을 기다리고만 있어요. 스무 살이 된 그는 가젤에게 새 주인을 찾아주고자 이별을 고하고, 가난한 화가들이 모여 사는 파리의 몽마르트르로 향합니다. 가젤은 명마가 됐고, 7년이 지난 후 로트레크는 시선을 확 사로잡는 감각적인 광고 포스터를 그려 그 분야의 최고가 되지요.
날뛰는 말을 그린 여성 화가
<작품 3>은 말 시장에서 아직 주인을 만나지 못한 말들을 보여줍니다. 길들여지지 않은 채 날뛰고 있죠. 19세기 프랑스 화가 로자 보뇌르(1822~1899)가 제작한 ‘말 시장’이라는 작품으로, 가로 5m가 넘는 커다란 캔버스에 그려졌어요. 보뇌르가 살던 때는 여자가 말처럼 움직임이 많은 동물을 그리는 전문 화가로 활동하는 데 제약이 많았던 시기였어요. 그는 말의 다양한 동작을 하나하나 스케치로 그리면서 연구하려고 말 시장에서 매일 살다시피 했어요.
그렇지만 말을 따라 뛰어다니며 관찰하기에 긴 치마는 골칫거리였고, 긴 곱슬머리는 바람 때문에 엉켜 빗질이 되지 않았죠. 보뇌르는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여자는 꼭 치마를 입어야 한다는 당시의 엄격한 전통을 어기고, 경찰청에 바지를 입게 해달라고 허가 요청을 냈습니다. 경찰은 이를 허가해 줬죠. 그로 인해 여성으로서 평범하게 살 수는 없었지만, 동물을 실제처럼 자연스럽게 그리는 데 최고 수준이라는 만인의 인정을 받게 됐답니다.
말의 순수한 영혼
<작품 4>는 독일의 프란츠 마르크(1880~1916)가 그린 ‘거대한 푸른 말들’이에요. 마르크는 말의 겉모습보다는 내면의 영혼을 화폭에 담으려 했어요. 그는 말을 볼 때마다 가슴이 뛰었다고 해요. 사악함이 전혀 깃들지 않은 순수한 영혼을 가진 생명체로 느껴졌대요.
색 중에서는 파란색이 정신적으로 가장 고결한 상태를 나타낼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어요. 파란 말을 타고 오는 사람은 오염된 인간 사회를 구원할 예언자와도 같은 존재일 거라고 믿기도 했습니다. 마르크는 20세기 초 독일의 표현주의(객관적 사실보다 주관적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 그룹인 ‘청기사파’로 활동했는데, 청기사가 바로 푸른 말을 탄 사람을 뜻해요. ‘거대한 푸른 말들’은 말의 순수한 영혼과 파란색의 고결함이 합쳐진 그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