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단편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엔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헌재)에 있는 백송이 중요한 소재로 나옵니다. 주인공은 우연히 지하철에서 1년 전 이혼한 여자와 만나 안국역에서 내려 골목길을 정처 없이 걷습니다. 그런데 같이 걸은 길을 지도에 표시해 보고, 어떤 나무 한 그루를 중심으로 돌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바로 헌재 백송이었습니다. 소설은 이것이 우연인지 아닌지, 농담인지 아닌지를 묻습니다. 그러면서 ‘삶의 행로가 하나의 거대한 농담’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릅니다.

헌재 백송은 추정 수령이 600년 이상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백송입니다. 지금부터 600년 전이면 세종 초기입니다. 이곳에 헌재가 들어서기 전에는 창덕여고가 있었고, 그 전에는 연암 박지원의 손자이며 개화파 주요 인물인 우의정 박규수의 집터였다고 합니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 있는 백송. 이 나무는 6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김민철 기자

가까이서 보면 천연기념물인 이 백송의 위용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높이는 17m이고 지표면에서부터 75㎝ 높이에서 줄기가 두 갈래로 갈라져 V자 모양을 만들고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혹시 흰 페인트를 칠해 놓은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나무껍질이 새하얀 색입니다. 2024년 말 폭설에 가지 5곳이 찢어지거나 부러지는 피해를 입었지만 잘 견디고 있습니다.

백송은 중국이 원산지로, 헌재 백송도 조선 시대에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가져다 심은 것이라고 합니다. 백송은 젊어서는 나무껍질이 푸르스름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상당히 큰 얼룩무늬로 벗겨지면서 흰빛을 띱니다. 그래서 이름이 백송(白松)입니다. 상당히 나이를 먹어야만 제대로 된 백송 색깔이 나온다고 합니다. 백송은 바늘잎(바늘처럼 가늘고 길게 생긴 침엽수 잎)이 3개씩 모여 나는 것으로도 구분할 수 있습니다. 소나무, 곰솔, 반송은 바늘잎이 2개씩, 리기다소나무와 백송은 3개씩, 잣나무는 5개씩 모여 달립니다.

백송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오래됐지만 씨앗 발아율이 낮은 데다 옮겨 심으면 죽는 경우가 많아 널리 퍼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고목의 수도 적습니다. 헌재 백송 외에 서울 조계사 백송, 경기 고양 송포 백송, 경기 이천 신대리 백송, 충남 예산 용궁리 백송 등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관리를 받는 정도입니다. 대부분의 천연기념물 백송이 수도권에 있는 것도 특징입니다. 과거 중국에 왕래할 만한 고위 관리가 주로 수도권에 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산 백송은 추사 김정희가 베이징에 사신 수행원으로 갔다가 가져와 심은 것이라고 합니다. 서울 창경궁 춘당지 옆에도 나무껍질이 눈이 부실 정도로 새하얀 백송 세 그루가 자라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발아율을 높이는 기술과 뿌리분(나무를 옮겨 심을 때 뿌리 부분을 어느 정도 크기의 덩어리로 만든 것)을 크게 떠서 잘 이식하는 방법 등이 알려져 곳곳에서 백송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대부분 나무껍질이 아직 푸르스름한 젊은 나무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