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하층민의 삶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대부분 태어난 지역에 살면서 누군가 시키는 일만 묵묵히 하면 됐지요. 귀족들도 인생이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는 별다르지 않았습니다. 고귀한 신분 자체로 세상의 인정을 받았으니까요.

산업이 발달한 근대에 와서는 상황이 달라졌어요. 과거보다 자유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이 태어날 때의 신분대로 평생 사는 일이 적어졌습니다. 중산층도 늘어났어요. 중산층은 자신이 얼마나 노력하는지에 따라 높이 올라갈 수도 있고, 전보다 못한 처지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폴란드 출신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1925~2017)은 산업화 이후 시대를 ‘액체 근대’라고 불러요. 삶과 일상이 고체처럼 정해진 틀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고, 유연하게 바뀐다는 뜻입니다.

자유가 늘어나고 살림살이가 나아지면서 사람들은 행복해졌을까요? 굶어 죽을 위험, 누군가에게 공격받을지 모른다는 위협이 거의 없어졌어도 여전히 불안해합니다. 뭐든지 될 수 있다는 가능성 뒤에는 아무것도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숨어 있으니까요. 발전 속도는 나날이 빨라지고 경쟁도 치열해져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듭니다. 이렇게 생기는 불안을 바우만은 ‘액체 불안’이라고 부르는데요. 액체 불안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식인종은 적을 먹어 버렸습니다. 위험을 아예 뱃속에 넣어 없애버린 거죠. 그러나 아무리 많이 잡아먹어도 적은 곳곳에서 끊임없이 나타납니다.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예요. 먹거리 안전에 대한 걱정이 커지면 사람들은 식품 성분을 더욱 꼼꼼하게 신경 씁니다. 산업 현장에서 사고가 나면 이를 막는 지침을 더욱 촘촘하게 짜곤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위험을 완전히 막진 못해요.

세상은 일어날 만한 나쁜 일을 ‘리스크(위험) 관리’로 다스리려 합니다. 그러나 모든 일이 복잡하게 얽힌 현대 정보 사회에선 작은 문제 하나가 사회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기도 해요. 해킹, 교통 참사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는 예측하기도 어렵고 일반인이 대비할 방법도 별로 없어요.

바우만은 정치가들이 불안을 이용해 권력을 움켜쥔다고 경고합니다. 불법 이민자, 테러리스트, 시장을 장악한 외국 기업 등 때문에 우리나라 사회가 망가진다고 주장하면서 사람들의 두려움을 ‘누구 탓’으로 돌리는 식이지요. 그 결과 독재, 전쟁으로 이어질 때도 있어요. 바우만의 예상은 지금 세계에서 현실로 나타나는 듯합니다.

그래서 바우만은 “정치 공간이 다시 열려야 한다”고 힘줘 말합니다. 막연한 두려움에 휘둘리지 말고, 모두가 자유롭고 안전한 세상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이를 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시민들이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새해가 밝아옵니다. 두려움에 정정당당하게 맞서며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우리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