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경 지음 l 출판사 현암사 l 가격 8500원
고조선을 세운 단군 왕검은 하늘의 임금 환인의 아들 환웅과 곰에서 인간으로 변한 웅녀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도 하늘의 제왕의 아들입니다. 신라를 세운 혁거세는 우물가에 있던 하늘의 말 곁의 알에서 태어났습니다. 가야를 세운 수로는 하늘에서 내려온 알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 고대 국가의 건국 설화는 하늘의 자손임을 강조했지요.
이런 이야기가 실린 ‘삼국유사’는 13세기 고려의 일연 스님이 고조선부터 후삼국 시대까지의 유사(遺事)를 모아 엮은 책입니다. 유사는 기록에서 빠졌거나 자세히 다뤄지지 못했거나 잊힌 일입니다. 그런데 신화나 전설같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는 이야기를 역사책에 기록해도 될까요? 이에 대해 일연 스님은 중국 역사서에도 옛날 신화와 전설이 많이 실려 있다고 하면서 “삼국의 시조들이 모두 신기한 일로 탄생했음이 어찌 괴이하겠는가”라고 말합니다.
우리 문학의 역사에서도 ‘삼국유사’는 중요합니다. 신라 시대 노래이자 시(詩)인 ‘향가’가 14편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25편 가운데 절반이 넘지요. 삼국유사에 실린 향가 중 ‘제망매가’는 월명 스님이 지었습니다. 일찍 세상을 떠난 여동생의 제사를 지내면서 부르는 노래예요. “간다는 말도 못하고 가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잎과 같이, 한 가지(부모)에서 나서도 가는 곳을 모르는구나.”
‘삼국유사’에는 여성들 이야기도 실려 있습니다. 신라 경덕왕 때 귀진이라는 사람 집의 욱면이라는 여자 종은 절에 가서 열심히 불경을 외웠습니다. 귀진은 욱면이 불경을 외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하루 만에 다 하기 힘든 일을 시키지만, 욱면은 일을 일찍 마무리하고 또 절에 갔습니다. 어느 날 하늘에서 음악 소리가 들리더니 욱면은 하늘로 올라가 부처가 됐습니다. 깊은 신앙심으로 성차별과 신분 차별을 뛰어넘은 것입니다.
세계문화유산 불국사·석굴암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신라 시대 모량리라는 곳에 ‘대성’이라는 소년이 홀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어요. 가난하지만 신앙심이 깊었던 어린 대성은 힘들게 일한 대가로 받은 밭을 어머니를 설득해 절에 기부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갑자기 죽고 말았지요. 열 달 뒤 대성은 김문량의 집에서 다시 태어납니다. 대성은 현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석굴암)를 세웠다고 해요.
역사책 대부분은 정치와 전쟁, 군주와 영웅 이야기를 많이 다룹니다. 그러나 ‘삼국유사’에서는 종교, 문학, 예술, 풍속에 대한 사람들의 희망과 절망이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펼쳐집니다. 요즘 많은 외국인이 한국의 대중음악, 드라마, 영화, 음식 등을 즐깁니다. 우리나라 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고 합니다. ‘삼국유사’야말로 현대 외국인들에게 널리 소개할 만한 한국의 이야기, ‘K판타지’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