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베네수엘라 민주화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58)가 시상식이 열린 노르웨이 오슬로에 지난 11일 도착했어요. 마차도의 오슬로행은 쉽지 않았어요. 베네수엘라의 독재 정권의 감시를 피하려고 가발을 쓴 채로 여러 군 검문소를 통과했고, 작은 나무배로 카리브해를 건넌 뒤 전용기를 타고 유럽에 도착했어요.
마차도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오랜 독재와 권위적 통치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이끌어 온 인물입니다. 그는 오랫동안 숨어서 지내면서 온라인으로 정치 활동을 해왔어요.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시상식에 가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다는 사실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둘러싼 투쟁이 오늘날에도 진행 중임을 보여줍니다.
노벨 평화상은 단순히 착한 개인이나 단체에 주는 것이 아니에요. 그 시대 인류가 마주한 위기 속에서 국제사회가 어떤 가치를 선택했는지 보여주는 기록이라고 할 수 있어요. 과거에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역사를 배경으로 노벨상을 받았는지 살펴볼까요?
전쟁터에서 인간 존엄성을 외친 사업가 뒤낭
장 앙리 뒤낭(1828~1910)은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난 사업가였어요. 그는 18세부터 제네바 자선 협회 회원으로 활동했고, 24세에는 YMCA(기독교청년회) 제네바 지부를 만들었죠.
1859년 이탈리아 북부 솔페리노에서 벌어진 프랑스·사르데냐 연합군과 오스트리아군 간의 전투가 그의 삶을 바꿨습니다. 이 전투에는 약 35만명의 군대가 투입됐는데 하루 동안 6000여 명이 사망하고 4만여 명이 다쳤어요. 뒤낭은 사업 때문에 이동하다가 우연히 전투 현장에서 죽어가는 군인들을 목격했어요. 이후 솔페리노에 임시 병원을 세우고 다친 군인들을 돌봐줄 봉사자들을 모집했어요.
뒤낭은 이 경험을 ‘솔페리노의 회상’이라는 책에 담았어요. 이 책에서 전쟁 중 다친 병사를 돕는 구호 단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어요. 뒤낭은 책을 들고 유럽 각국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지지를 모았고, 1863년 2월 ‘국제 부상자 구조 협회’를 만들었어요. 이 단체가 오늘날 적십자의 시작입니다. 다음 해에는 전쟁터에서 다친 사람들을 보호하자는 ‘제1차 제네바 협약’도 체결됐어요.
뒤낭은 사회 활동에 힘쓰느라 사업에는 신경 쓰지 못했고 결국 회사는 파산했어요. 개인적으론 가난하게 살았죠. 그는 1901년 국제 적십자 운동의 창립자이자 제네바 협약의 제안자로 인정받아 제1회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뒤낭의 생일인 5월 8일은 국제 적십자 운동 기념일이 됐고, 적십자 활동가 중 뛰어난 이들은 뒤낭의 이름을 딴 메달을 받고 있어요. 인간 존엄성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인도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 인정받은 것이죠.
상금 환자 위해 쓴 의사 슈바이처
독일 출신 알베르트 슈바이처(1875~1965)는 원래 오르간 연주자이자 신학자였어요. 어느 날 잡지에서 아프리카 콩고의 비참한 의료 현실을 읽고, 30세에 의대에 입학했어요. 그리고 7년 뒤 의사가 되어 아프리카 오지로 떠났지요. 그는 1913년 아프리카 가봉의 랑바레네에 병원을 만들어 말라리아, 한센병 등에 걸린 원주민을 치료했어요.
당시 가봉은 프랑스 식민지였습니다. 그런데 슈바이처는 독일 출신이었죠.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프랑스와 독일은 적국이 되었고, 프랑스 식민지에 있던 독일인이었던 슈바이처는 포로 수용소에 갇히기도 했어요.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 슈바이처는 다시 랑바레네로 돌아와 평생 그곳에서 환자를 돌보며 지냈답니다.
슈바이처는 모든 생명이 가진 살고자 하는 의지를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사람뿐 아니라 벌레처럼 아주 작은 생명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야만 인간도 존엄성을 회복하고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했어요. 이런 그의 철학을 ‘생명에 대한 경외’라고 부릅니다.
1952년 그는 ‘생명에 대한 경외’로 평화의 기초를 다진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받았어요. 그는 상금 전액을 랑바레네에 한센병 환자를 위한 시설을 짓는 데 썼어요. 슈바이처의 헌신적인 삶은 전쟁의 시대를 살고 있던 당시 세계인들에게 큰 울림을 줬습니다.
환경 운동가가 노벨 평화상을 받은 이유
미국의 정치인 앨 고어(77)는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했어요. 이후 환경 운동가로 변신해 세계를 돌며 지구 온난화에 대한 강연을 했어요. 온난화 현상으로 아프리카 킬리만자로산의 만년설과 세계에서 가장 높은 히말라야 산맥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초대형 허리케인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줬죠. 그는 지구 온난화를 막지 못하면 이상 기후, 홍수, 가뭄, 전염병이 찾아올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2007년 유엔(UN) 산하 기구인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는 ‘제4차 평가 보고서’를 발표했어요. 이 보고서는 ‘지구 온난화는 명백한 사실이고, 인간의 온실가스 배출이 그 원인’이라는 내용이었죠. 이후 국제사회는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노벨상 수상자를 정하는 노벨위원회는 2007년 10월 앨 고어와 IPCC에 공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줬습니다. 이전까지 노벨 평화상은 분쟁을 해결하거나 인권 문제에 힘쓴 인물·단체에 주어졌기 때문에, 당시 환경 운동가가 노벨 평화상을 받은 데 대한 비판도 있었다고 해요. 이에 대해 노벨위원회는 지구 온난화가 인류의 평화로운 삶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