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용 지음 l 출판사 그래도봄 l 가격 2만2000원

말의 본래 모습이나 말에 새겨진 과거 흔적을 ‘어원(語原)’이라고 합니다. 어원은 그 말을 사용한 사람들의 역사입니다. 이 책은 어원을 소개하는 말 역사책입니다.

‘사돈’은 부부의 각 집안이 상대 집안과 집안 사람들을 부르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돈은 뜻밖에 ‘순대’라는 말과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단어는 모두 여진족이라고 부르기도 했던 만주족의 말, 만주어에서 온 것들입니다. 해장국에 넣는 소나 돼지의 굳은 핏덩어리인 ‘선지’도 만주어에서 왔습니다.

우리말 중 만주·몽골·일본과 서양 여러 나라의 영향을 받은 단어가 많습니다. 우리가 먹는 농작물 이름은 그 농작물이 우리 땅에 들어온 경로를 말해 줄 때가 많습니다. ‘호밀’ ‘호도(호두)’가 대표적입니다. 이 말들에 쓰이는 한자 ‘오랑캐 호(胡)’는 중앙아시아나 서아시아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원산지가 인도 남부 해안인 ‘후추’도 원래 ‘호초’였습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 아메리카에 도착한 후, 그곳이 원산지인 작물들이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그중 옥수수를 ‘강냉이’라고도 부르는데요. 중국 남쪽 장강 유역을 가리키는 ‘강남’에 사물을 나타내는 ‘-이’가 붙어 ‘강남이’였다가 ‘강냉이’로 변했습니다. ‘강낭콩’도 신대륙에서 중국 강남을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와 ‘강남콩’이었다가 ‘강낭콩’으로 변했습니다.

‘깡통’에서 ‘깡’은 양철통을 뜻하는 영어 ‘캔(can)’입니다. ‘통(筒)’은 본래 대나무 마디를 뜻하는 말로, 대나무를 잘라 그릇으로 쓰거나 물건을 담던 데서 비롯됐습니다. 영어의 ‘캔’이 일본에서 ‘간’으로 발음되다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깡’으로 바뀌었습니다.

한자에서 온 우리말 단어가 많아서 ‘이 말의 어원도 한자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작나무’의 ‘자작’은 한자 같지만, 불에 탈 때 ‘자작자작’ 소리가 난다고 해서 붙은 우리말 이름입니다. 한자로는 ‘백화목’이라 합니다.

우리말인 줄 짐작했는데 한자어인 경우도 있습니다. 보잘것없다는 뜻의 ‘시시하다’에서 ‘시시’는 ‘세세(細細)’였지요. ‘세세하다’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너무 잘아서 보잘것없다’는 뜻도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시시하다’의 어원입니다. 뜻은 남고 발음만 바뀐 것이지요.

어원을 몰라도 말하는 데 문제가 없는데 꼭 알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저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어원을 찾는 일은 옛날이야기 같은 재미가 있고, 말에 관한 지식을 얻을 수 있기에 정확한 어휘 구사에도 도움이 된다. 재미를 느낀다는 것은 말을 친근하게 여기고 더욱 가까워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글과 말이 더욱 재밌어지고 국어 실력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