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이 열흘 정도 남았습니다. 연말이 되면 자연스레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에는 어떤 길을 택할지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타고난 조건보다 어떤 선택과 노력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지요. 그리스 신화 최고의 영웅 헤라클레스는 바로 그런 깨달음을 주는 인물입니다.

헤라클레스는 신들의 왕 제우스와 미케네의 공주 알크메네 사이에서 태어났어요. 제우스가 알크메네의 남편으로 변신해서, 자신의 아내 헤라가 아닌 다른 여인과 헤라클레스를 낳은 거예요. 제우스는 헤라의 미움을 사지 않게 하려고 헤라클레스 이름에 헤라의 이름을 넣었지요. 헤라클레스는 ‘헤라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뜻이랍니다. 하지만 제우스의 기대와 달리 헤라클레스는 질투의 화신 헤라의 최대 표적이 됐어요.

그럼에도 헤라클레스는 헤라의 모든 괴롭힘을 극복하고 수많은 임무를 해낸 뒤, 몸에 독이 퍼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쌓은 장작 위에 올라 불을 붙여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했어요. 이후 제우스는 다른 신들의 동의를 얻어 헤라클레스를 신으로 만들어 올림포스 궁전으로 불러들였답니다.

어린 헤라클레스가 맨손으로 뱀의 목을 졸라 죽이는 모습을 담은 로마 시대 조각이에요. 이 뱀은 헤라가 남편 제우스의 혼외자인 헤라클레스를 해치려고 보낸 것입니다.
헤라클레스가 사자와 싸우고 있어요. 벨기에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가 17세기에 그렸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죽어서 신이 된 헤라클레스

그렇다면 유일하게 헤라클레스만 죽은 뒤 신이 된 것은 과연 아버지 제우스의 남다른 애정과 사랑 덕분이었을까요? 헤라클레스는 별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신들의 왕 제우스라서 ‘아빠 찬스’로 손쉽게 신이 된 것일까요?

독일 작가 프리드리히 실러는 2행짜리 아주 짤막한 시 ‘제우스가 헤라클레스에게’를 통해 이 질문에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실러의 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내(제우스)가 네(헤라클레스)게 준 넥타르(신들이 마시는 음료) 덕분에 네가 신성을 얻은 것이 아니다. 너의 신적인 힘 덕분에 네가 넥타르를 얻은 것이다.‘

실러는 이 시에서 헤라클레스의 노력을 ‘신적인 힘’이라고 표현합니다. 신적인 힘은 헤라클레스가 인간으로서 보인 엄청난 노력을 가리킵니다. 헤라클레스가 죽어 신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으로서 그가 보인 남다른 노력 덕분이었다는 것이지요.

실러는 독일 문학에서 고전주의를 완성한 작가입니다. 독일 고전주의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신보다 인간을 중시하는 ‘인본주의’입니다. 실러의 시 ‘제우스가 헤라클레스에게’는 인본주의를 아주 짧은 시로 명쾌하게 설명해 주고 있어요.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 중 9가지를 새긴 로마 시대 석관이에요. 돌로 만든 관인 석관은 겉면에 신화 이야기를 새겨 넣기도 해요.
안니발레 카라치의 1596년 그림 '갈림길의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가 '덕성'이라는 이름의 여성(왼쪽)과 '욕망'이라는 이름의 여성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위키피디아

저주로 저지른 죄를 씻기 위한 ‘12가지 과업’

헤라클레스가 ‘12가지 과업’을 하게 된 이유도 헤라의 저주를 받고 자신이 저지른 살인죄를 씻기 위해서였습니다. 괴물을 맨손으로 제압하는 등 인간으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 12가지를 완수한 헤라클레스의 남다른 노력이었지요.

헤라클레스가 자란 ‘테베’라는 나라는 오래전부터 매년 이웃 나라 오르코메노스에 예물을 바쳐 왔답니다. 헤라클레스는 이를 내내 부당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은밀하게 테베 청년들을 모아 오르코메노스를 공격해 정복한 다음, 그동안 오르코메노스가 매년 받아왔던 예물의 두 배를 테베에 바치도록 했지요. 그러자 테베의 왕 크레온은 헤라클레스에게 감사의 표시로 딸 메가라와 결혼하게 해줬어요. 그 후 헤라클레스는 메가라와 아들 둘을 낳고 한동안 행복하게 살았어요.

하지만 질투의 화신 헤라는 눈엣가시 헤라클레스가 잘사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그에게 광기를 불어넣었어요. 미쳐버린 헤라클레스 눈에 아내 메가라는 사자, 아들 둘은 하이에나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결국 가족에게 달려들어 모두 목 졸라 죽이고 말았죠.

한참 후 제정신이 든 헤라클레스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경악했어요. 그는 테베를 떠나 떠돌아다니다가 신에게 미래를 물을 수 있는 ‘아폴론 신전’을 찾아가 살인죄를 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답니다. 그러자 아폴론 신의 대답을 전하는 여성 사제 피티아가 이렇게 대답했어요. “미케네로 가서 에우리스테우스 왕이 시키는 과업을 완수해라! 네가 이 일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너는 두 아들과 아내를 죽인 살인죄를 씻게 될 것이다.”

헤라클레스는 신들의 왕 제우스의 아들이었기에, 인간에게 봉사하는 것은 자존심이 무척 상하는 일이었을 거예요. 게다가 에우리스테우스 왕은 원래 헤라클레스가 차지할 왕위를 헤라의 도움을 받아 가로챈 얄미운 사촌이었어요. 그래도 헤라클레스는 기꺼이 에우리스테우스를 찾아가 그가 맡긴 임무를 완수하겠다고 나섰답니다. 그게 바로 유명한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이지요.

헤라클레스는 칼과 창이 통하지 않는 사자를 맨손으로 목 졸라 쓰러뜨리고, 머리를 자르면 두 개로 늘어나는 괴물 ‘히드라’는 불로 태워 물리쳤어요. 화살처럼 빠른 신성한 사슴은 상처 하나 없이 생포했고, 수십 년 동안 청소하지 않은 외양간은 강물의 흐름을 바꿔 하루 만에 청소했죠. 힘뿐 아니라 지혜도 필요했던 과업들이었습니다.

갈림길의 헤라클레스, 그의 선택은

헤라클레스의 노력은 또 다른 일화를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기원전 5세기쯤 그리스의 수사(말과 글을 아름답게 다듬는 일) 학자 프로디코스의 희곡 ‘갈림길의 헤라클레스’에서 헤라클레스는 막 청년이 된 어느 날 비몽사몽간 꿈을 꿉니다. 꿈에서 헤라클레스는 갈림길에 서 있었어요. 한쪽 길에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여자가 자신과 가는 길은 언제나 장밋빛이며 모든 욕망을 마음껏 채울 수 있다고 손짓했어요.

다른 길에는 ‘덕성(어질고 너그러움)’이라는 이름의 정숙한 여자가 자기와 가는 길은 고난과 고통의 길이지만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며 함께 가자고 했어요. 헤라클레스는 갈림길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덕성과 함께 가는 길을 택했답니다. 이 일화에서 바로 ‘헤라클레스의 선택’이라는 관용구가 유래했지요. 이는 쉽지만 타락한 길이 아니라, 힘들지만 올바른 길을 택하는 중요한 결단을 의미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