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 모래사장을 맨발로 걷다가 너무 뜨거워서 놀란 적 한 번쯤 있을 거예요. 모래는 열 손실이 낮아 열을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어요. 최근 핀란드에서는 모래의 이런 특성을 활용해 배터리를 만들어 난방에 활용하고 있대요. 들을수록 신기한 모래 배터리, 일반 배터리와 어떻게 다른지 알아볼까요?

전기를 저장하는 배터리, 열을 저장하는 배터리

배터리는 화학 반응을 이용해 전기를 만들어내는 장치입니다. 화학 에너지 형태로 저장했다가 전기 에너지로 바꿔 쓰죠. 배터리의 구성 요소는 크게 양극, 음극, 분리막, 전해질(배터리액) 등 4개로 나눌 수 있어요. 두 전극(양극·음극)이 전해질과 화학 반응을 하면서 전기를 만들죠. 한쪽은 전자를 받아들이는 양극(+), 다른 한쪽은 전자를 보내주는 음극(-)이 됩니다.

배터리는 크게 1차 전지와 2차 전지로 나뉩니다. 1차 전지는 알칼리 전지 등 건전지처럼 한 번 쓰면 화학 반응이 끝나기 때문에 그대로 폐기해야 하는 일회용을 말해요. 2차전지는 리튬이온 배터리 등 재충전이 가능한 배터리죠. 리튬이온 배터리는 노트북, 휴대전화, 전기자동차 등 우리 일상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배터리입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에 전원을 연결하면 양극(+)에 있던 리튬이온(Li+)과 전자가 음극(-)으로 향해요. 양극의 리튬이온과 전자가 음극으로 다 옮겨가면 충전이 끝나면서 화학 에너지가 저장되죠. 반대로 음극(-)에 있던 리튬이온과 전자가 양극(+)으로 가면 전류가 흐르는데, 이것이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 에너지예요. 리튬이온이 전부 양극으로 이동하면 방전 상태가 됩니다.

모래 배터리는 조금 다르답니다. 모래 배터리는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이용해서 모래를 뜨겁게 달군 뒤 열에너지를 모래에 저장하는 원리예요. 전기를 직접 모으는 게 아니라 전기 에너지를 열에너지로 변환해서 모래에 보존하는 것이죠. 이 열에너지를 그대로 온수나 난방에 쓰는 방식입니다.

그래픽=유재일

모래 배터리는 왜 필요할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겨요. 스위치 한 번 켜면 전기로도 편리하게 난방할 수 있을 텐데, 왜 굳이 전기 에너지를 열에너지로 바꿔서 모래 배터리에 저장하는 걸까요? 오히려 비효율적일 텐데 말이죠. 이는 재생에너지와 관련 있답니다.

최근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각국은 친환경 전력을 공급하려고 노력해요. 그런데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자연 조건에 의존해 발전하는 재생에너지는 시간이나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들쭉날쭉합니다. 가령, 해가 지거나 바람이 불지 않으면 전력을 만들 수 없어요. 또 반대로 너무 맑거나 바람이 강하면 전력이 남게 된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바로 모래 배터리 같은 ‘에너지 저장 장치’예요. 에너지 저장 장치를 이용하면 해가 쨍쨍할 때나 바람이 많이 불 때 재생 에너지로 전기를 열심히 생산해 모아놨다가 필요할 때 즉시 공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리튬 이온 배터리 같은 에너지 저장 장치는 덩치가 크고 비용도 많이 들어요. 더구나 주요 소재인 리튬은 구하기도 어렵죠.

그래서 비용도 저렴하고, 구하기도 쉽고, 설치도 간편한 모래 배터리를 사용하게 된 거예요. 모래는 생산·폐기 과정에서 독성 물질을 배출하지 않아 친환경적이라는 장점도 있어요. 모래 배터리를 개발한 핀란드의 열 저장 전문 스타트업 ‘폴라 나이트 에너지’는 이 배터리를 사용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약 70%까지 줄이는 데 성공했답니다.

여름철 저장한 열에너지, 겨울철 난방에 써요

핀란드의 폴라 나이트 에너지는 지난 8월 31일(현지 시각) 세계에서 처음으로 모래 배터리를 가동하기 시작했어요. 핀란드를 비롯한 북유럽 국가는 겨울철 추위가 심해 여름철이나 바람이 강한 시기에 대량으로 발생하는 전력을 모아놨다가, 겨울 난방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특히 핀란드는 그동안 주 연료인 가스를 러시아에서 주로 공급받았는데, 최근 몇 년 전부터 시작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심각한 전력난을 겪어왔어요. 그래서 떠올린 아이디어가 단순한 소재 ‘모래’였답니다.

모래는 열이 얼마나 잘 전달되는지 나타내는 ‘열전도율’이 0.06W/m·K로 낮아 뜨거운 열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는 열이 식는 속도가 느려 열 저장 효율이 높다는 것을 의미해요. 물의 열전도율은 0.6W/m·K인데, 모래가 물보다 열을 10배가량 느리게 전달하는 셈이죠. 모래 1㎏의 온도가 40도에서 20도로 낮아지는 데는 5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해요.

모래 배터리의 원리는 단순해요. 풍력·태양광 발전기와 파이프로 연결된 높이 13m, 폭 15m짜리 원통 모양 강철 저장고에 100t(톤) 정도 모래를 채운 다음, 장치를 작동하면 저장고 속 모래가 최대 500도까지 가열되는 방식이에요. 이렇게 가열돼 저장된 열에너지는 500도로 수개월 동안 유지될 수 있대요.

핀란드는 여름철에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의 남은 전기 에너지를 모래 배터리에 열에너지로 저장해 뒀다가 겨울철에 난방과 온수 공급에 활용한다고 해요. 저장고 안에는 모래에 파묻힌 배관이 설치돼 있어요. 이 배관을 지나며 뜨거워진 공기가 물을 데우고, 이렇게 가열된 물이 지역 난방과 온수에 사용되는 거랍니다. 모래 배터리는 최대 100메가와트시(MWh)의 열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데요. 이는 핀란드 남부 도시 포르나이넨 지역 전체가 겨울철 일주일 동안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양이라고 합니다.

현재 모래 배터리는 전기 에너지를 열에너지로 저장하는 데만 사용하고 있어요. 모래 배터리에 저장된 열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다시 전환하려면 터빈 같은 추가 장치가 필요해요. 핀란드 내 다른 지역에서는 모래 배터리의 열에너지를 전기로 다시 변환하는 실험을 할 예정입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도 모래 배터리를 더 실용적인 에너지 저장 장치로 활용하기 위한 연구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