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대표할 만한 건축 거장을 묻는다면 아마 ‘모더니즘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르코르뷔지에(1887~1965)를 꼽을 사람이 많을 겁니다. 현재 서울 서대문구 연희정음에서는 르코르뷔지에와 한국 건축가 김중업의 건축 사진전이 열리고 있지요. 연희정음은 르코르뷔지에의 제자였던 김중업이 지은 주택을 개조한 공간입니다. 르코르뷔지에의 삶을 따라가 보면 현대 건축이 어떻게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는지 이해할 수 있죠.

르코르뷔지에가 현대 건축 5원칙을 적용해 만든 대표작인 빌라 사보아 모습. /위키피디아

스위스의 시계 산업 중심지 라쇼드퐁에서 태어난 르코르뷔지에의 본명은 샤를 에두아르 잔느레입니다. 가업을 이어받아 시계 장인이 되려고 미술학교에서 시계 장식과 공예 등을 배우게 됐는데, 그의 재능을 알아본 선생님의 권유로 건축 공부를 시작하게 됐어요.

르코르뷔지에는 현대 건축을 송두리째 바꿨습니다. 1914년에 제안한 ‘돔이노’ 구조를 통해서죠. 돔이노는 당시까지만 해도 외벽이 감당하던 건물의 무게를 철근 콘크리트 기둥이 지탱하도록 하는 구조입니다. 돔이노 구조로 건물을 지으면 창문과 지붕, 바닥을 건축가가 자유롭게 만들 수 있었죠. 1923년에 출간한 책 ‘건축을 향하여’에서는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고 말하며, 건축도 기계처럼 불필요한 장식을 줄이고 쓰임새에 맞게 효율적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했어요.

1927년에는 ‘현대 건축의 5원칙’을 발표합니다. 철근 콘크리트 기둥으로 건물 1층을 들어 올리고(필로티 구조), 더 이상 무게를 받지 않게 된 건물 외벽은 자유롭게 디자인하고, 기다란 통창을 둬 실내로 햇빛이 더 많이 들어오도록 하고, 내벽은 원하는 위치에 자유롭게 배치해 방을 마음대로 만들고, 옥상에는 정원을 만들자는 아이디어인데요. 지금도 건물을 지을 때 자연스럽게 사용되는 방식이죠. 프랑스 파리 외곽에 있는 주택 ‘빌라 사보아’는 르코르뷔지에가 이 원칙을 적용해 만든 대표작이에요.

그는 인간 신체 크기를 기준으로 ‘모듈러’라는 치수 체계를 만들어 건축물에 적용했어요. 사람들이 편안하게 느끼는 지붕 높이, 창문 위치 등을 만들려고 한 거죠. 모듈러가 적용된 건물의 대표적 예시는 바로 프랑스 마르세유에 있는 유니테 다비타시옹입니다. 현대 주상 복합 아파트의 원조인 이곳은 상점, 호텔, 체육관 등을 모두 갖추고 있어요. 모듈러는 그의 후기 대표작인 프랑스 롱샹 성당에서도 나타납니다.

르코르뷔지에는 도시에서 사람들이 사는 지역과 일하는 지역을 분리하고, 일하는 지역에 높은 건물을 모아 짓자고 제안했어요. 이렇게 하면 나머지 공간을 녹지로 채우기 쉽다고 본 것이죠. 당시에는 너무 급진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여러 나라가 도시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그의 아이디어가 모범으로 자리 잡았어요. 우리나라 도시 개발에도 반영돼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