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퇴직금을 한 번에 받는 대신 매달 나눠 받는 ‘퇴직연금제도’로 바꾸려는 정책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정년을 맞은 이들이 안정적인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취지인데요. 그렇다면 오늘날과 같은 사회보장제도가 없었던 과거엔 퇴직 이후 어떻게 생활을 이어갔을까요? 오늘은 조선 시대의 관리들이 퇴직 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관리가 70세가 되면 벼슬에서 물러나던 ‘치사(致仕)‘ 관행이 있었어요. 평균 수명이 길지 않았던 시대,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여유롭게 보낼 수 있게 하는 취지였죠. 실제로 조선의 일부 왕들은 치사한 전직 관리에게 녹봉을 주거나, 연회를 베풀어 술과 음식을 내리기도 했지요.
퇴직한 관리와 그 가족의 생계를 돕기 위한 제도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조선 초기의 토지 제도인 과전법입니다. 과전법은 관리에게 일정 토지에서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한인 ‘수조권’을 주는 제도인데, 이는 현직뿐 아니라 퇴직 관리에게도 지급됐어요. 다만 사망 시에는 국가에 반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유족까지 배려했습니다. 관리가 사망하면 아내는 자식이 있는 경우 토지 전체의 수조권을, 없는 경우는 절반만을 유지하도록 했지요. 이를 ‘수신전(守信田)’ 제도라고 했는데, 여기서 ‘수신’은 남편이 죽은 뒤 재혼하지 않고 절개를 지킨다는 의미였습니다. 따라서 여자가 재혼하는 경우엔 이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죠.
또 다른 제도로는 휼양전(恤養田)이 있었습니다. 이는 부모가 모두 사망하고 미성년 자녀만 남았을 때 어린 자녀가 성장할 때까지 아버지가 받던 수조권을 유지하도록 한 제도입니다. 즉 과전법은 관리를 대상으로 수조권을 준 제도지만, 가족들에게 세습되었던 것이죠.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문제가 생겼습니다. 수조권을 받을 토지는 한정되어 있는데, 수조권을 주어야 할 관리들은 점점 더 늘어난다는 것이었죠. 일부 경우 제도를 악용해 수신전이나 휼양전을 계속 유지하는 사례도 생겼습니다. 이에 세조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전법을 폐지하고 ‘직전법’을 시행했습니다. 오직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권을 지급하는 제도였죠.
하지만 이 제도 역시 새로운 문제를 낳았습니다. 퇴직 관리에 대한 지원이 사라지자, 현직 관리들이 재직 중 자신이 수조권을 가진 토지에서 과도하게 세금을 거두거나 수탈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죠. 이에 수신전과 휼양전의 부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이미 현직 관리에게 나눠준 토지를 다시 회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웠습니다.
퇴직 이후 생계를 스스로 해결해야 했던 관리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노후를 준비했습니다. 가문이 부유한 경우 문제가 없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향촌 사회에서 자문 역할을 하거나 서당을 운영하며 생계를 이어가기도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