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오래된 고전인 ‘맹자’에는 송나라의 한 농부 이야기가 나옵니다. 농작물이 빨리 자라길 바란 농부는 밭을 돌아다니며 싹을 하나하나 조금씩 뽑아 올렸습니다. 잡아당겨 주면 더 빨리 자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요. 하지만 뿌리가 단단해지기도 전에 뽑혀 나온 싹들은 모두 말라 죽어버렸습니다. 농부는 좋은 뜻에서 한 일이었지만 결국 싹은 죽어버렸으니 하지 않느니만 못한 일이었습니다.

최근 지나친 조기교육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지만, 조선 시대도 다를 바 없었습니다. 자식들을 과거에 급제시키겠다는 목표로 조급해하는 어른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아이가 서너 살만 되면 한문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치려고 했습니다. 실학자 정약용도 태어난 지 100일 된 첫째 아들 학연에게 “빨리 커서 과거 급제하고 높은 관리가 되어야지”라는 시를 지었고, 어릴 때부터 과거 시험 공부를 시켰습니다. 사대부가 쓴 육아 일기 ‘양아록’의 저자 묵재 이문건은 몰락한 가문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아들과 손자에게 공부를 시켰습니다. 하지만 둘 다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많은 부모는 성급한 마음으로 자식들을 다그치다가 기대와 다른 결과를 마주하곤 했습니다. 공자도 “일을 빨리 하려고 하면 도리어 이루지 못한다”고 했지요.

한편 어릴 때 신통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훌륭하게 성장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어릴 때 동네 사람들이 무서워서 피해 다닐 정도로 말썽쟁이 골목대장이었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을 잃고 “짐승처럼 사방을 뛰어다니며” 놀았다던 오성 이항복은 나중에 영의정이 되었습니다. 그의 장인이자 행주대첩의 영웅인 권율도 사십이 넘도록 제대로 된 직업도 없고 공부도 하지 않으면서 산으로 들로 놀러 다녔습니다.

그럼 아이들은 알아서 잘 자랄 테니 교육은 필요 없고 내버려둬야 할까요? 그것도 답은 아닙니다. 조선 후기의 학자 윤기는 그의 책 ‘무명자집’에서 성급한 부모들의 행동을 송나라 농부처럼 싹을 뽑는 알묘(揠苗)라고 하면서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 방법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힘써 노력하되 미리 기대하지 말고, 여유롭게 대하여 저절로 터득하게 하고, 무르익게 해서 제 발로 오게 하여 순리대로 지도하고, 이끌며 격려하고 권장하라.”

윤기는 같은 책에서 부모의 성급함을 무엇보다도 경계했습니다. 아이에게 맞지 않는 어려운 것을 가르치고, 빨리 배우지 못한다고 화내는 부모야말로 자라지도 않은 싹을 뽑는 ‘알묘’를 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통하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것을 최고로 갖춰주고 최고의 교육을 시켜주면 아이가 훌륭하게 자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조급함을 참고 싹의 성장을 기다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부모의 가장 큰 의무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