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4월 11일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에서는 전 세계 눈과 귀가 집중된 재판이 시작됐습니다. 재판 피고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 친위대 장교 아돌프 아이히만이었습니다. 그는 전투가 아니라 주로 행정 업무를 담당했지만, 문제는 그가 맡은 행정 업무가 유대인의 추방과 학살에 관련된 일이었다는 점이었어요. 아이히만은 유럽 각지에 있는 유대인을 모아 강제수용소로 보내는 열차 수송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전쟁에서 독일이 패배한 후 아르헨티나로 도주했던 아이히만은 15년간 그를 쫓은 이스라엘 첩보부 모사드 요원들에게 잡혀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게 됐습니다.

/조선일보DB 1961년 이스라엘에서 전범 재판을 받고 있는 아돌프 아이히만(박스 안 가운데).

세계 각국 기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든 가운데 방탄 유리로 둘러싸인 피고인석에 나타난 아이히만의 모습은 사람들 예상과 달랐어요. 수백만 명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몬 무시무시한 악당의 모습이 아니라 평범하고 나약한 공무원의 행색이었거든요. 그는 유대인들이 겪은 비극에 대해선 사과했지만 자신은 평범한 공무원(군인)이었기 때문에 히틀러를 비롯한 다른 상사들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고, 자기 손으로 직접 누군가를 죽인 적은 한 번도 없다며 무죄를 주장했어요. 아이히만의 변호인은 재판 절차상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어요. 아이히만의 행동은 당시 독일법에 따르면 위법한 일이 아니고 이미 오랜 시간이 흘러서 공소시효도 지났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2차 대전 중에는 국가로 성립되지 않았던 이스라엘이 재판을 관할하는 것도 문제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아이히만이 엄청난 범죄에 관여한 건 맞지만 군인으로서 전쟁 중 상관의 명령을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던 건 아닌가 술렁이기 시작했죠.

그런데 아이히만의 주장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결국 국가적 차원에서 벌이는 나쁜 일은 나중에 처벌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논리로 이어져요. 왜냐면 나쁜 국가가 나쁜 법을 바탕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게 언제나 ‘합법’이 될 테니까요.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우리 국민에게 저지른 수많은 범죄 행위도 ‘당시 법으로 보자면 합법’이니 아무 문제가 없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인간의 기본적인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는 국경을 초월하고 공소시효나 관할권을 넘어서 개입하는 게 타당하다는 ‘반인륜 범죄’라는 개념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에 따라 무고한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아이히만은 국제법상 반인륜 범죄를 저지른 게 된 거죠. ‘그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아이히만은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했지만 그런 옳지 않은 일을 ‘생각 없이' 따른 결과, 거대한 비극이 만들어졌다면 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가 나왔습니다. 결국 아이히만은 1년 넘는 재판 끝에 사형을 선고받고 1962년 5월 31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이 재판을 지켜봤던 철학자 해나 아렌트는 거대한 악행이 보통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생각 없는' 행동들 하나하나가 모여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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