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5월 11일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극장이 모여있는 지구) 뉴런던시어터 극장 앞. 영국의 스타 뮤지컬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초조하게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그의 신작 뮤지컬 ‘캐츠’가 초연 무대에 올라가는 날이었기 때문이죠.

뮤지컬 '캣츠'에 등장하는 고양이 '드미터'(왼쪽)와 '봄발루리나'예요. /설앤컴퍼니

웨버는 당시 웨스트엔드를 대표하는 유명 작곡가였어요.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에비타’까지 성공시켰지만, ‘고양이들 세상’을 이야기하는 이 생소한 뮤지컬에 대해선 많은 이가 실패를 점쳤어요. 인간이 아닌 고양이들이 주인공인 데다, 기승전결 줄거리 대신 ‘시’를 뮤지컬로 제작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뮤지컬은 오늘날 ‘레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오페라의 유령’과 함께 세계 4대 뮤지컬로 손꼽힙니다. 1981년 초연 이후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 세계 30국 300여 도시에서 8000만명 관람이라는 놀라운 기록도 세우고 있답니다. 뮤지컬 ‘캣츠’는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엘리엇의 극시가 원작

‘캣츠’의 원작은 1948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미국 작가 T.S. 엘리엇(1888~1965)의 시입니다. 1939년 그가 유일하게 어린이를 위해 쓴 시집 ‘주머니쥐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지혜로운 고양이 이야기(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이지요. 엘리엇이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시를 쓴 것은 자신이 고양이를 키우는 애묘가였기 때문이에요. 그는 자신의 고양이 젤리로럼 이름도 시 속에 슬쩍 끼워 넣었죠.

엘리엇이 직접 표지 그림까지 그린 이 시집은 사실 인간 사회를 풍자한 작품었습니다. 작품 속엔 아이들에게 고양이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려주는 ‘늙은 주머니쥐(Old Possum)’가 나오는데요. 그가 시인 엘리엇 본인을 의미해요.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 시인이자 그와 절친한 친구였던 시인 에즈라 파운드가 붙여준 별명이었다고 해요.

T.S. 엘리엇의 시는 난해하기로 유명합니다. 그는 영어권에서 가장 해박한 시인이라는 평가답게 프랑스어, 독일어, 라틴어, 그리스어, 산스크리트어까지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다양한 문학 작품과 신화, 전설을 바탕으로 심오한 주제를 탐구한 작가예요. 하버드대에서 철학과 프랑스 문학을 공부하고 프랑스 소르본대와 영국 옥스퍼드대로 옮겨 유럽 문학까지 파고들었습니다. 이후 ’20세기 가장 중요한 시'라는 평가를 받는 대표작 ‘황무지’를 선보이고, 희곡 형식의 ‘극시(Dramatic Poetry)’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키며 세계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됐어요.

◇고양이로 완벽히 변신하는 배우들

1972년 영국의 뮤지컬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공항에서 우연하게 읽게 된 엘리엇의 ‘주머니쥐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지혜로운 고양이 이야기’ 시집을 읽고 이를 뮤지컬로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작품이 각기 다른 고양이들을 소개하는 개별적 시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야기를 하나로 이어줄 구성이 필요했죠.

웨버와 뮤지컬 연출가 트레버 넌은 달이 휘영청 떠오르는 1년의 단 하룻밤, 최고의 고양이를 뽑기 위한 무도회가 열리고 온 도시의 고양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기 이야기를 하는 방식을 떠올렸답니다. 이렇게 해서 아름다운 음악과 신나는 춤이 넘치는 환상적 고양이 뮤지컬이 탄생했어요.

뮤지컬에 맞춰 각색했기 때문에 고양이 캐릭터 중에는 시집에는 없는 고양이도 있어요. ‘캣츠’의 가장 유명한 캐릭터 그리자벨라죠. 어린이들이 읽기엔 그 사연이 너무 슬퍼서 엘리엇이 출간 당시 시집에서는 제외했는데, 작곡가 웨버가 한창 공연을 준비할 무렵 엘리엇의 아내가 남편이 세상에 발표하지 않은 ‘외로운 고양이 그리자벨라’에 대한 여덟 줄의 짧은 시를 전해주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그리자벨라’ 캐릭터가 탄생하게 되었어요. 그리자벨라가 부르는 뮤지컬 곡 ‘추억(Memory)’은 ‘캣츠’를 대표하는 곡이자 오늘날 전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곡이 되었어요. 우리나라 고등학교 음악 교과서에도 실려 있답니다.

‘캣츠’의 또 다른 볼거리는 고양이로 완벽하게 변신한 배우들인데요. 얼굴 분장이나 의상, 그리고 몸짓까지 완벽하게 고양이를 연기하는 배우들에게 감탄하게 돼요. 놀라운 것은 배우들이 모두 직접 고양이 분장을 한다는 거예요. 40년째 이어져 온 전통인데 배우들이 직접 자기 얼굴에 분장을 하며 인간 몸에서 고양이로 완벽하게 변신하는 중요한 의식을 치른다고 합니다. 분장을 다 마친 뒤에는 공연 스태프 등 ‘인간’들과는 말하지 않는 것이 규칙이라고 해요. 실제 고양이는 인간과 말을 할 수 없으니까요.

이렇게 1시간 넘도록 분장하고 가발을 쓰는데, 객석 곳곳을 누비며 관객을 깜짝 놀래는 것도 재미 중 하나라고 합니다. 그런데 올해는 코로나 방역 때문에 이런 객석 이동이 줄었다고 해요. 다만 흐름상 객석에서 등장하는 장면이 꼭 필요한 고양이들은 메이크업을 한 마스크를 쓰고 있다고 하니, 눈여겨봐도 재밌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