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서 공장 노동자로 일하는 A씨는 2년 전 베트남 여성과 결혼해 딸을 얻었다. 한국 생활이 서툰 아내가 한 살배기 아기를 혼자 키우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결국 A씨 부부는 작년 7월 일명 ‘양육 비자(F-1-5)’를 활용해 장인·장모를 한국으로 모셔왔다. 아이 양육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반년이 지난 현재 A씨 장인·장모는 손녀를 키우는 대신 전국을 떠돌고 있다고 한다. 식당 등에 불법 취업해 돈을 벌고 있다는 것이다. A씨의 한 지인은 “결국 A씨 장인·장모가 손녀 양육 비자를 받아 불법 취업한 것 아니냐”고 했다.
한국은 결혼 이민자들의 육아를 돕기 위해 양육 비자를 운영한다. 정식 비자 이름은 ‘결혼이민자의 부모 등 가족의 방문동거 비자’다. 그런데 이 비자가 도입 취지와 달리 외국인들의 불법 취업 통로로 악용되고 있다.
2012년 도입된 이 비자를 받으면 한국에 최장 7년 체류할 수 있다. 다만 자녀 양육을 위해 발급하는 비자라서 한국에서 취업할 수는 없다. 비자를 신청할 때 ‘한국에서 취업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도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양육을 명목으로 비자를 받아 입국한 뒤 전국을 떠돌며 일하는 ‘메뚜기식 취업’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한다. 외국인의 불법 취업 통로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양육 비자는 취업이 가능한 다른 비자보다 발급받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임신이나 출산, 자녀 양육 지원 같은 사유를 내세워 가족관계증명서 등 간단한 서류만 제출하면 한 달 안에 발급받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베트남 등 일부 동남아 국가에서는 한국 양육 비자를 알선하는 브로커도 활동하고 있다. 법무법인 어스의 백수웅 변호사는 “현지 브로커들이 경기 안산이나 이천 등 공장이 많은 동네 일자리를 알선하고 돈을 받는 식”이라고 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양육 비자를 받아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은 2021년 2만7745명, 2022년 3만9082명, 2023년 4만2529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2025년 기준으론 3만3009명이 양육 비자를 받아 국내에 체류 중이다.
양육 비자로 입국해 취업할 경우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범칙금이나 출국 명령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2월 대전에서는 여동생의 자녀들을 돌보겠다며 양육 비자를 받아 입국한 베트남 국적 B씨가 주방 보조로 일하다 적발돼 출국 명령 처분을 받았다. 다만 통상 불법 취업자에 대한 처분이 출입국관리소의 재량에 맡겨지는 경우가 많아 범칙금 부과로 끝나는 사례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