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버 ‘레옹신부(왼쪽)’가 온라인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다. 가상 캐릭터를 활용해 교리를 알리고 있다. /유뷰트

“주교님 흉 보면 잡혀가나요?”

지난달 27일 오후 네이버 스트리밍 플랫폼 ‘치지직’의 한 라이브 방송에 접속하자 채팅창에 질문이 쏟아졌다. 방송 진행자는 천주교 교리(敎理)를 알리는 ‘레옹 신부’. 얼굴·몸 위에 만화 캐릭터를 덧씌우는 프로그램을 이용해 진행자 얼굴을 감추는 이른바 ‘버추얼 유튜버(버튜버)’다. 그는 서품을 받은 사제다. 자세한 정체는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소속 교구 허락을 받아 유튜브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3시간 40분간 이어진 라이브 방송에서 레옹 신부는 “시작 기도부터 하겠다”며 방송을 열고 시청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주교님을 험담하느냐는 질문엔 “그건 제 얼굴에 침 뱉기죠”라고 받아쳤다. ‘성지 순례 썰(이야기) 풀어달라’는 요청엔 “예루살렘 사진을 함께 보며 이야기해보자”고 했다. ‘술은 끊어야 하느냐’는 물음에 레옹 신부는 “술은 무조건 안 돼가 아니고 적당히 하라는 것”이라며 “우리도 술 마신다. 만취가 문제”라고 했다. MZ세대 구독자들은 권위를 내려놓은 사제의 모습이 신선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지난 2월 한 달간 매회 평균 시청 횟수는 1500회를 넘었다.

유튜버 ‘불법스님’이 온라인 방송에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캐릭터 ‘사자 보이즈’의 천도재를 지내는 모습./유튜브

종교계가 근엄함을 벗어던지고 변신하고 있다. 신도·교인들과 소통하기 위해 법당이나 제단을 벗어나 온라인 등으로 무대를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조계종의 ‘불법 스님’은 첫 치지직 방송에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캐릭터인 사자 보이즈의 천도재(薦度齋)를 치러 국내외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불법 스님의 유튜브 구독자는 6만5000여명이다. 대한기독교나사렛성결회 소속 목사인 ‘김목사’는 성경 속 인물을 애니메이션과 함께 알기 쉽게 설명하면서 젊은 층의 인기를 끌고 있다. 성경 강의를 하다가 ‘킹받는다(열받는다)’는 표현도 쓴다.

그래픽=이진영

종교인들이 치지직이나 유튜브에서 가상 캐릭터를 쓰는 건 2030세대에게 다가가기 위한 의도라고 한다. 종교 간 장벽도 허문다. 불법 스님과 레옹 신부는 최근 ‘합방’(합동 방송)을 하고 종교 간 공통·차이점 등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을 두고 종교계에선 “절박한 위기감이 깔려 있다”고 말한다. 한국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20대(18~29세) 무종교인 비율은 2021년 67%에서 지난해 72%로 치솟았다. 청년 10명 중 7명은 종교가 없다는 뜻이다. 한국의 탈(脫)종교화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작년 6월 미국 퓨리서치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무종교인 증가율은 6.9%로 일본(5.3%)과 베트남(5.5%)보다 높았다.

2024서울국제불교박람회에서 선보인 DJ 뉴진스님(개그맨 윤성호)의 디제잉 무대. 20·30대에게 친숙하게 접근하기 위해 ‘재밌는 불교’를 행사 컨셉으로 잡았다. /김병권 기자

천주교 의정부교구는 일산과 의정부에서 ‘카페형 청년 센터’를 운영한다. 평일에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카페로 운영되지만, 금요일 저녁이나 주말이면 청년들을 위한 미사 공간으로 변신한다. 이곳에선 딱딱한 고해소 대신 카페 같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신부님과 커피를 마시며 고해성사를 할 수 있다. 2024년 서울국제불교박람회에선 개그맨 윤성호(뉴진스님)가 EDM 비트에 맞춰 “이 또한 지나가리!”를 외치자 10만 관객이 열광했다. 방문객 10명 중 8명이 MZ세대였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영성의 개인화’로 분석한다. 과거 종교가 독점했던 공동체적 감동과 위로를 팬덤 문화가 대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해영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는 “질병과 전쟁의 고통을 사후 세계를 통해 위로하던 방식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며 “현재 2030은 종교에 대해 애증조차 없는 ‘깡그리 무관심’ 상태”라고 했다.

성탄절 당일인 지난해 25일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예수님 생일 카페. /황채영 기자

좋아하는 스타의 생일을 기념해 팬들이 카페를 빌려 축하하는 ‘생일 카페(생카)’ 문화도 종교계로 번지고 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약사여래(藥師如來·질병을 치료해 주는 부처)’를 캐릭터화한 반창고를 판매하거나 크리스마스에 ‘예수님 생신 축하 파티’를 여는 식이다. 서명삼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는 “명품 패션과 스트리트 패션이 공존하듯 종교도 ‘공급 전략’을 다양화하는 과정”이라며 “종교가 일상 속으로 스며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엿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