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61) 전 서울시의원이 차명으로 더불어민주당 현역 국회의원들에게 고액을 후원한 정황을 경찰이 포착하고 수사 중인 것으로 29일 알려졌다. 경찰은 김씨가 2023년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구청장 공천을 받기 위해 의원들에게 금품 로비를 시도했을 가능성을 의심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김씨가 국회의원의 보좌관이나 구·시의원 개인 계좌 등을 거쳐 의원들에게 후원금을 보냈는지 자금 흐름을 추적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가 이른바 ‘계좌 세탁 후원’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는 이날 김씨를 소환해 금품 로비 여부를 조사했다. 네 번째 소환이다. 경찰은 김씨가 민주당 인사들과 강서구청장 공천을 받기 위해 로비를 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대화 녹음 파일을 입수해 조사하다가, 김씨가 민주당 의원들을 후원할 때 남동생과 어머니가 대표로 있는 가족 회사에서 일하는 계약직과 아르바이트생 계좌를 이용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이들에게 ‘급여’ ‘수고비’ 명목으로 500만~900만원을 송금했다가, “실수로 0을 하나 더 붙여 송금했다. 잘못 보낸 돈은 다른 계좌로 송금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런데 김씨가 다시 송금해달라고 요구한 계좌 가운데 민주당 국회의원 보좌관이나 구·시의원 개인 계좌가 다수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경→가족 회사 관계자→민주당 의원 보좌관이나 구·시의원’으로 돈이 흘러갔다는 것이다.
김씨가 이런 식으로 돈을 보낸 민주당 보좌관 등이 소속된 현역 의원실은 4곳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김씨 돈을 송금받은 의원 보좌관이나 구·시의원들이 돈을 의원에게 전달했을 가능성을 규명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자금법상 타인 명의로 정치자금을 기부하거나 공식 후원 계좌가 아닌 다른 계좌로 후원하는 건 불법이다.
김씨는 가족 회사 관계자들에게 주로 900만원대 이하를 송금하고 이를 다른 계좌로 돌려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000만원 이상 현금을 계좌 이체 등을 통해 거래하면 금융 당국에 즉시 보고되는데 이를 피하려 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는다. 정치권 관계자는 “구·시의원은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과 밀접한 관계라 김씨가 돈을 세탁해 의원들에게 금품 로비를 벌인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경찰은 김씨가 가족, 지인 명의로 의원들에게 공식 후원금을 보내는 이른바 ‘쪼개기 후원’ 의혹도 수사 중이다. 경찰은 김씨가 2022~2023년 강선우(서울 강서갑) 의원에게 가족·지인 명의로 두 차례에 걸쳐 후원금 1억3000만원을 입금한 정황을 포착해 조사 중이다.
본지가 입수한 강 의원 후원 계좌 목록을 보면, 2022년 10월 17명이 강 의원에게 300만~500만원을 내는 등 총 8200만원을 강 의원 후원 계좌에 입금했는데, 상당수가 김씨 지인이나 가족으로 추정되는 인물이었다. 강 의원실은 그해 11~12월 순차적으로 후원금을 반환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 12월 8~12일에도 강 의원 후원 계좌에 5000만원이 입금되자 강 의원은 김씨가 또 ‘쪼개기 후원’을 한 것이라 판단해 전액 반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최근 민주당을 탈당한 김병기(서울 동작갑) 의원 사건과 관련해 경찰은 이날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와 서초구 쿠팡 사회공헌위원회를 압수수색했다. 김 의원이 국회 국정감사를 앞둔 지난해 9월 박대준 전 한국 쿠팡 대표와 식사하며 쿠팡에 취업한 자기 전직 보좌진에 대한 인사상 불이익을 요구한 혐의를 규명하기 위해서다. 당시 김 의원은 집권 민주당의 원내대표였다. 김 의원이 자기와 불화를 빚고 의원실을 떠난 보좌진들에 대해 직위를 이용해 사적 보복에 나선 것 아닌지 수사하는 것이다. 경찰은 최근 2020년 총선 때 전직 동작구의원 2명에게서 불법 선거 자금을 받은 혐의 등으로 김 의원 자택을 압수수색하면서 김 의원이 쓰던 휴대전화 등을 확보해 포렌식 작업을 시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선 “지난 총선 때 민주당 후보 검증위원장을 맡았던 김 의원 휴대전화에 뭐가 저장돼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라 여권 인사들이 긴장하는 분위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