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때 북한에 억류됐다가 탈북한 국군포로 김성태 씨가 2023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 상대 손해배상 2차 소송 승소 소감을 밝히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2023년 5월 국군포로 김성태 씨(93) 등 3명이 북한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는 원고들에게 각 5000만 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뉴스1

일본 도쿄지방법원이 북송 사업 피해 재일 교포들의 손을 들어준 가운데, 한국의 북한 인권 단체들은 이를 환영하며 국내 대법원에 계류 중인 국군포로 추심금 소송의 신속한 판결을 촉구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26일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도쿄지방법원은 가와사키 에이코 씨 등 탈북민 5명이 북한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북한 정부가 ‘지상 낙원’이라는 허위 선전으로 재일 교포들을 유인하고, 북한 내에서 거주 이전의 자유를 박탈한 것은 조직적인 위법 행위라고 밝혔다.

이는 2022년 1심 당시 ‘소멸 시효’ 등을 이유로 청구를 기각했던 판단을 뒤집고, 2023년 도쿄고등재판소의 파기환송 취지를 받아들여 북한의 인권 침해 책임을 명확히 인정한 판결이다.

이날 물망초, 6·25국군포로가족회, 전환기 정의 워킹그룹(TJWG) 등 7개 단체는 공동 성명을 냈다. 단체들은 “일본 법원이 북송 피해자들의 인권 침해를 인정하고 승소 판결을 내린 것을 환영한다”면서도 “정작 한국에서는 이미 승소한 국군포로들이 배상금을 받지 못한 채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다”고 했다.

1951년 5월 중공군이 벌인 2차 춘계 공세에서 포로로 붙잡힌 국군 포로들 모습. 중국측이 촬영한 자료 사진./백선엽장군기념재단

이들은 특히 대법원에 상고된 지 거의 2년이 지난 국군포로 추심금 소송의 판결 지연을 강하게 비판했다. 앞서 2020년과 2023년, 서울중앙지법은 한재복, 유영복 씨 등 국군포로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북한 정권은 1인당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는 한국 사법부가 북한 정권의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한 첫 사례였다.

하지만 실제 배상을 받기 위한 과정은 사법부의 외면 속에 멈춰 서 있다. 국군포로 측은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이 북한에 주어야 할 저작권료(공탁금 약 20억원 이상)를 배상금으로 달라는 추심금 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과 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서울동부지법(1·2심)은 “경문협이 북한에 줄 채무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국군포로 측에 패소 판결을 내렸고, 현재 이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이에 대해 단체들은 “통일부가 뒤늦게 사실조회에 응하여 제출한 ‘경문협 산하 남북저작권센터와 북한 저작권사무국 간의 계약서’가 핵심 증거였음에도, 재판부는 이를 판결문에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며 “이는 명백한 ‘채증법칙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2025년 5월 경기 이천시 자택에서 국군 포로 유영복씨가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왼쪽 흑백 사진은 전쟁터로 떠나기 전 아버지(윗줄)와 여동생(왼쪽)과 함께 촬영한 젊은 시절 유씨(오른쪽)의 모습이다. /박성원 기자

1994년 이후 사선을 넘어 귀환한 국군포로 80명 중 현재 생존자는 단 6명뿐이다. 승소 판결을 받았던 어르신 중에서도 유영복 어르신 한 분을 제외한 여섯 분이 이미 판결 확정을 보지 못한 채 별세했다.

단체들은 “일본 사법부도 형식적 논리와 시효의 장벽을 깨고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며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점을 상기하며, 대법원은 70여 년을 기다려온 국군포로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즉각 상고심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