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사랑의 온도탑’의 나눔 온도가 ‘103.9도’로 표시된 모습. 사랑의 온도탑은 기부 목표액 달성률로 온도를 표시하는데, 올해 목표액(4500억원)의 103.9%에 해당하는 4676억원이 모였다는 의미다. 올해는 작년보다 이틀 빠른 지난 11일 목표액 모금을 달성했다. 11일 기준 41만명이 1억원 넘는 성금을 냈고, 사랑의열매가 만든 고액 기부 중견·중소기업 모임인 ‘나눔명문기업’에 34개 기업이 새로 가입하는 등 많은 시민과 기업이 온정을 보탰다./이태경 기자

직장인 이진경(28)씨는 작년부터 서울 송파구의 한 봉사 단체에 매달 3만원씩 후원하고 있다. 이 단체를 택한 건 기부금 사용 내역을 투명하게 공유해 주기 때문이다. 이씨는 “4~5개월에 한 번씩 내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알려주는데, 최근엔 저소득층 중학생의 책가방 구매에 사용됐다는 소식을 듣고 흐뭇했다”며 “소액으로 좋은 일도 하고 연말정산 혜택까지 받으니 기부 효능감이 크다”고 했다.

대학생 김예진(25)씨는 2022년부터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 배달’에 매달 5000원씩 후원 중이다. 독거 노인 현관에 우유가 2개 이상 쌓이면 위기 신호로 간주, 즉시 관공서 등에 알려 고독사를 막는 봉사 활동이다. 김 씨는 “길에서 뵙는 어르신들이 남 같지 않은데, 우유 배달로 안부를 챙긴다는 구체적인 취지가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기부자들의 심리적 만족도가 새로운 기부 트렌드로 떠올랐다. 23일 사랑의열매 나눔문화연구소가 발표한 ‘2026 기부 트렌드’ 보고서는 “최근 기부자들은 자신의 기부금이 얼마나 확실한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냈는지 따져보는 ‘투자형 기부자’로 진화하고 있다”고 했다. 투자를 할 때 투자 대비 수익(ROI)을 따지듯, 기부에 따른 심리적 만족도를 중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최근 기부자들은 거창한 명분보다는 내가 체감할 수 있는 우리 동네의 문제, 혹은 재난 상황처럼 지금 당장 도움이 필요한 곳에 자원을 집중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변화는 고물가·저성장 등 ‘불확실성의 일상화’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자발적 기부 행위만큼은 실패 없이, 확실한 심리적 만족을 얻고자 하는 욕구가 커졌다는 것이다.

박미희 사랑의열매 나눔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은 “재난과 경제적 불안 속에서 내가 정말 좋은 일을 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하는, 실패를 두려워하는 현대인의 심리가 반영된 것”이라고 했다.

보고서는 소액으로 먼저 기부처의 신뢰도를 검증해보는 이른바 ‘리트머스형 기부’가 새로운 표준이 되고 있다고 했다. 리트머스 종이로 용액을 확인하듯, 5000원 내외를 먼저 후원해 단체의 피드백 수준을 확인한 뒤 정기 후원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사랑의열매 관계자는 “모금 단체들도 감정에 호소하기보다 투명한 데이터와 성과 지표를 명확하게 밝히면서 체질을 개선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