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후 서울 한 지하 피시방 입구에 들어서자 삼겹살 굽는 냄새가 진동했다. 카운터 앞 붉은 조명이 켜진 정육점 고기 진열대엔 손질된 삼겹살과 목살이 길게 늘어섰다. 그 옆에 고기를 굽는 바비큐 기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피시방 사장 원병희(46)씨는 손님들 옆에서 칼을 들고 18㎏가 넘는 삼겹살 덩어리를 능숙하게 손질했다.
요즘 원씨는 종일 고기를 굽고 잘라 게임을 즐기는 손님들에게 나르는 게 일이다. 직전 고깃집 폐업 후 2019년 가게를 인수하며 “이번엔 절대 망하면 안 된다”는 절박함으로 고기를 구워 날랐다.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하면서 손님이 급감했고 결국 작년 5월 법원에 개인회생을 신청해 지난달 회생 인가가 났다. 한마디로 망한 것이다. 그런 그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작년부터 아르바이트생을 쓰지 않고 직접 야간에도 근무한다. 원씨는 “시간당 1000원짜리 게임비로는 전기 요금도 못 낸다”며 “손님들에게 고기를 안 팔면 당장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했다.
소비 침체와 이에 따른 부채 급증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이 N잡러(두 개 이상 직업을 가진 사람)로 변신하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4년 폐업한 자영업자 수가 사상 최초로 100만명을 넘어섰다. ‘사업 부진’을 폐업 사유로 든 비율이 50.2%였다. 금융 위기 직후인 2010년 이후 최고치다.
특히 소매·음식점업 폐업이 45%였다. 이에 전국 골목 상권에서 매출에 도움이 된다면 업종과 관계없이 무엇이든 파는 업태가 확산하고 있다. 본업 하나만으로는 가게 월세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부업 판매로 매출 감소를 메우려는 몸부림이다.
서울 서초구에서 6년째 카페를 운영하는 윤모(33)씨 매장은 최근 ‘답례품 포장 공장’으로 변했다. 윤씨는 가게 앞 건물에 저가 프랜차이즈 커피점이 들어오면서 매출이 반토막 나자 결혼식, 승진 등을 기념하는 답례품 판매를 시작했다고 한다. 윤씨는 어머니까지 동원해 프랑스 디저트인 휘낭시에를 하루 100개 이상 굽고 포장한다. 그는 “본업이 시원치 않으니 커피를 팔기 위해 카운터에 서 있는 시간보다 디저트를 포장하는 시간이 더 길다”고 했다.
영업장 ‘공간’을 쪼개 임대하는 자영업자도 늘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교대역 근처 한 와인바는 최근 평일 낮 시간에 ‘공간 대관업’을 시작했다. 소개팅 명소였던 이곳은 평일 시간당 8만원에 바를 통째로 빌려준다. 주로 파티룸이나 스터디룸으로 빌리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와인바 업주는 “와인 팔아 남는 마진보다 임대료 수입이 더 쏠쏠하다”고 했다.
서초구에서 8년째 채소 가게를 운영하는 유경덕(48)씨는 3개월 전 가게 한편에 붕어빵 기계를 들였다. 유씨는 “붕어빵이라도 팔아야 직원들 월급을 줄 수 있다”고 했다. 대학로에서 10년째 삼계탕집을 운영하는 박선홍(45)씨는 얼마 전 300만원을 빚내 가게 앞에 전기구이 통닭 설비를 설치했다. 보양식 이미지가 강한 삼계탕으로는 저녁 술장사가 어렵기 때문이다. 박씨는 “‘맛 변했다’는 소리를 들을까 겁나지만, 하루 서너 마리라도 더 팔아야 월세를 감당할 수 있다”고 했다.
자영업자들의 매출이 줄어든 주된 원인으로는 온라인 주문·배달 문화가 확산된 게 꼽힌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 2일 발표한 ‘2025년 11월 온라인쇼핑동향’을 보면, 지난해 11월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24조1613억원으로 전년 동월과 비교해 6.8% 증가했다. 골목상권 매출과 직결된 음식 서비스(배달 등) 거래액이 13.7%나 급증했고, 음·식료품 거래도 10.1% 늘었다. 본지가 만난 자영업자들은 “온라인으로 상품을 사는 소비자들이 많은 만큼 골목 자영업자들도 온·오프라인 판매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했다.
손님이 줄어든 매장에서 최근 유행하는 디저트 ‘두바이쫀득쿠키’(두쫀쿠)를 배달앱에서 판다. 일종의 ‘미끼 상품’이다. 지난 7일 서울 강서구의 뼈구이집 주방 솥단지에서는 육수 대신 인기 두쫀쿠 재료인 버터와 마시멜로가 녹고 있었다. 이 집 사장 조은별(31)씨는 “솥에서 버터 냄새가 멈추면 곧 폐업이라는 생각으로 일한다”고 했다. 양천구 목동의 10년 차 초밥집 사장 박상범(41)씨는 요즘 스시 칼 대신 반죽 거품기를 들었다. 박씨는 “두쫀쿠가 본업인 초밥을 살리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