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이브인 지난해 12월 24일 서울 강서구 서울식물원 잔디밭에서 열린 '경찰과 도둑' 놀이에서 도둑 역할을 맡은 사람들이 등에 '도둑' 표시 종이를 붙이고 있다./연합뉴스

“과격한 몸싸움은 안 됩니다! 안전하게 즐깁시다.”

성탄절인 지난달 25일 오후 7시.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에 두꺼운 패딩과 귀마개로 무장한 성인 남녀 20여 명이 원을 그리며 모여들었다. 칼바람 속에 체감 온도가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진 날씨였다. 이들은 이날 처음 만난 사이지만 이름이나 나이, 직업을 묻지 않았다. ‘주최자’라고 소개한 남성이 “감옥은 분수대 앞, (이동) 반경은 저기 나무까지”라고 외치자 참가자들이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튀어.” “잡아, 잡아!” 해가 져 어둑해진 공원에서 20대 남녀끼리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졌다. 이들은 모래 바닥에 미끄러져 흙먼지를 뒤집어쓰면서도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유년 시절 학교 운동장에서 하던 ‘경찰과 도둑’ 놀이를 하기 위해 모인 청년들이었다.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경찰과 도둑’ 놀이가 유행하고 있다. 청년층에서 ‘경도’라는 줄임말로 부를 정도다. ‘경도’ 모임 참가자는 주로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이나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통해 모은다. 기자가 2일 당근에서 ‘경찰과 도둑’을 검색했더니, 전국 곳곳에서 모임 참여자를 찾는 방이 300개가 넘었다. 일부 단체방은 참여자 수가 2000명을 넘었다.

모임은 대개 주최자가 공지한 시각과 장소에 맞춰 선착순으로 마감한다. 모임당 20~30명 정도가 최대 인원이다. 서울 홍익대나 신촌 등 인기 지역에선 모집 공지가 올라온 지 몇 분 만에 마감된다.

경찰 역할을 맡은 참가자가 계단 아래 숨은 도둑을 찾았다(가운데). /독자

성탄절을 앞둔 지난달 24일과 성탄절 당일 서울 동작구·영등포구 등에서 열린 ‘경도’ 모임에 참석해보니 고등학생부터 대학생·직장인 등이 참석했다. 대학생 정원영(22)씨는 “초등학교 때 운동장에서 하던 놀이를 다시 해보고 싶어 추위를 무릅쓰고 나왔다”고 했다.

경도 모임은 한때 유행했던 플래시몹과 비슷하면서도 차이가 있다고 참가자들은 말한다. 일시적인 집단 대면 모임이란 점은 플래시몹과 비슷하지만, 모임을 통해 일정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목적이 없다는 점에선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관계를 맺는 데 들어가는 감정 소모를 최소화하려는 MZ세대의 특성이 여가 생활에 반영됐다고 분석한다. 모임에 나온 이은진(28)씨는 “자기 소개 없이 놀이만 하고 끝나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 청년들이 팍팍한 현실을 잠시 잊으려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타인에 대한 경계와 신뢰 붕괴가 심해진 사회에서, 젊은 세대는 시간과 비용을 많이 들이지 않는 느슨하고 임시적인 관계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며 “고립과 고독 속에서 감정 교류를 회복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