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외부로 공개되지 않은 범죄 데이터를 생성형 AI(인공지능)를 통해 분석·정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17일 도입했다. 이에 따라 13만 경찰 중 수사를 담당하는 경찰 3만6000명은 이날부터 진술 조서 정리와 증거 분석, 압수 수색 영장 신청서 작성 등에서 AI를 활용할 수 있게 됐다. 경찰은 이 시스템이 정착되면 향후 체포·구속 영장 신청서 작성 단계에서도 AI를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경찰청은 이날 오전 9시부터 전국의 수사관들을 대상으로 ‘AI 기반 수사 지원 시스템’(KICS-AI)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LG의 자체 AI 모델 ‘엑사원’을 경찰 내부 시스템인 ‘킥스’와 연동해 수사 쟁점이나 판례를 제공한다. 범죄 증거물 분석은 물론 압수 수색 영장 신청서 초안 작성도 해준다. 지난 7월부터 시범 운영을 거쳐 이날 전국 수사 경찰들을 대상으로 도입됐다. 과거 일부 지방경찰청이 첨단 수사 기법 개발을 위해 AI를 부분적으로 이용해왔지만, 전국 경찰을 대상으로 AI 서비스를 일괄 도입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챗GPT 등 외부 AI 서비스와 달리 이번 AI 프로그램은 내부망으로만 결합돼 유출 우려가 없다”고 했다.

그래픽=박상훈

서울 도심 한 경찰서의 베테랑 수사관 A씨는 이날 오전 출근하자마자 AI 서비스에 ‘공무상 기밀 누설’이란 단어를 입력했다. 그는 최근 공무원들의 기밀 누설 혐의와 관련된 여러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그가 단어를 입력한 지 10초 만에 관련 판례는 물론 내부 경찰 데이터베이스에 입력돼 있던 범죄 기록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됐다. 평소 수사팀은 법제처 홈페이지에 접속해 관련 규정을 일일이 찾아왔다. 외부 AI 서비스에 사건 내용을 입력하고 법적 판단을 받아볼 수도 있었지만, 민감한 피해자 정보가 새어나갈 수 있다는 걱정이 컸다.

서울의 다른 경찰서 간부급 수사관 B씨도 이날 AI 서비스가 가동되자마자 사기 사건 피의자의 신문 조서 요약을 AI에 맡겼다. 20초 만에 A4 용지 20장 분량의 조서를 사건 개요와 피의자의 혐의, 사건 쟁점, 진술 요지 등을 포함, 1장 분량으로 정리했다. B 수사관은 “AI가 요약해 준 내용을 다듬어 바로 상사에게 제출해도 될 정도”라며 “서류 정리 시간이 대폭 줄어드는 만큼 수사에 전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경찰은 향후 AI 기능을 활용해 사기 범죄 등에 사용된 카드 번호 추적과 함께 검거된 해외 범죄자들에 대한 실시간 취조·번역 등에도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서울의 한 일선 수사팀 이모 경위도 이날 오후 AI를 통해 원하는 판례를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유령 법인을 이용한 대포 통장을 유통하는 범죄 조직을 쫓고 있다. 그런데 조직의 수법이 제각각이라 판례만 수백~수천 개였다. 외부 데이터베이스로는 일일이 검색해 내용을 확인한 뒤 다시 정리해 내부망에 입력해야 했다. 그런데 이날 AI 시스템으로 10분 만에 원하는 판례들만 모아서 요약할 수 있었다.

다만 경찰 일각에선 개인 정보, 금융 정보 등 각종 수사 기밀이 여전히 새어 나갈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삼성전자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은 이런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자사의 주요 사업 관련 정보를 AI에 입력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피해자의 민감한 개인 정보는 AI가 자동으로 익명 처리하도록 설계돼 있다”고 했다. 시스템을 구축한 LG CNS 관계자도 “AI가 경찰 내부망에서만 작동할 수 있도록 설계한 만큼 (내부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기 어렵다”고 했다.

경찰은 이번에 도입하는 AI 시스템을 고도화하기 위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의 수사기획조정관(치안감)이 팀장을 맡는 전담 태스크포스(TF)를 신설할 예정이라고 이날 밝혔다. TF는 매주 한 번씩 수사 지원 AI의 운영 성과를 평가하고 보완 방향 등을 논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