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서울 구로구의 IT 업체 사이버텔브릿지 사무실. 업체 직원이 성인 남성 손바닥만 한 검은색 장치를 들어 전원을 켠 후 내장된 키패드로 ID와 비밀번호를 입력해 로그인했다. 이어 촬영 버튼을 누르자 “촬영을 시작합니다”라는 안내 음성과 함께 붉은색 램프가 깜빡거렸다.

경찰이 2025년 연내에 정식 장비로 도입한 바디캠 장비. /사이버텔브릿지

이 장비는 경찰이 이달 말까지 전국 경찰관에게 보급하는 ‘바디캠’(휴대용 영상 촬영 장비)이다. 바디캠은 미국 등 해외에선 경찰 기본 장비로 보급돼 있지만, 국내에선 일부 경찰 직원이 사비를 들여 장만해서 사용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촬영된 영상 역시 개인 USB에 보관돼 보안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경찰이 바디캠을 정식 장비로 보급하고 영상 보관·외부 반출 등에 필요한 시스템도 마련한 것이다. 향후 경찰의 과잉 진압이나 소극적 대응 등 초동 대처에 대한 논란이 제기될 경우 바디캠 영상을 통해 명확한 상황 파악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전국 경찰 1만4000여 대 보급… 자체 편집·삭제 불가능

경찰은 전국 교통경찰, 지구대·파출소 등 지역경찰, 기동대 등 현장 출동이 잦은 직군에 이달 말까지 바디캠 1만4000여 대를 보급할 계획이다. 1080p 화질로 약 2500분간 영상 촬영이 가능하다. C타입 충전기로 2시간 동안 충전한 후 36시간까지 충전 없이 사용할 수 있다. 경찰은 바디캠을 허리 또는 가슴 부분에 부착할 수 있는 파우치도 함께 보급한다.

경찰관의 바디캠 착용 예시 사진. 조끼 가슴 부분에 바디캠을 보관하는 파우치가 부착돼 있다. /사이버텔브릿지

상황에 따라 다각도 촬영도 가능하다. 이날 업체 직원이 바디캠 측면 버튼을 조작하자, “팀 싱크 촬영”이라는 안내 음성과 함께 사무실에 있던 다른 바디캠들이 일제히 촬영을 시작했다. 반경 10m 내의 다른 바디캠을 동시에 작동시킬 수 있는 기능으로, 현장에서 다양한 각도로 상황을 촬영하기 위해 도입됐다. 영상을 촬영한 경찰관은 영상을 물리력 사용, 주취자 보호, 공무집행방해, 단속·계도·민원, 교통사고, 기타, 선택 안 함 등 7가지 상황으로 분류해 단말에 저장하게 된다.

촬영된 영상은 바디캠에 연결된 5G 통신망을 통해 광주광역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분원 서버로 자동 전송된다. 경찰관은 영상을 촬영한 후 12시간 동안 확인할 수 있지만 자체 편집·삭제는 불가능하다. 경찰관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영상을 편집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서버에 전송된 영상은 30일간 보관된 후 삭제되지만, 증거로 활용해야 할 경우 관련 절차를 거쳐 보존 기간을 최대 180일까지 연장할 수 있다.

경찰뿐만 아니라 사건 당사자 역시 바디캠 촬영 영상을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보할 수 있다. 이때 사건과 무관한 제3자의 얼굴이나 차량 번호판 등은 경찰 시스템의 자체 편집 기능을 통해 영상에서 자동으로 모자이크 처리된다.

기존에 경찰이 사설 바디캠으로 촬영한 영상을 받으려면 모자이크 처리를 수동으로 해야 했고, 이 처리 비용은 정보공개청구 신청자가 전부 부담해야 했다. 경찰 관계자는 “모자이크 비용만 1000만원이 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제는 비용 부담이 크게 줄어 영상 확보가 쉬워질 것”이라고 했다.

바디캠 촬영 대상은 범죄 상황으로 한정돼 집회 시 채증 등의 용도로는 바디캠을 사용할 수 없다. 다만 올 초 서부지법 사태처럼 집회 현장에서 범죄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촬영할 수 있다.

◇일선 경찰들 “족쇄 하나 더 늘어” 불만도

바디캠을 보급받게 된 일선 경찰관들 사이에선 “족쇄가 하나 더 생겼다”는 불만도 나온다. 바디캠 영상이 촬영되면 경찰의 대응이 영상 기록으로 남게 되는 데다 삭제도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관련 법령이나 절차를 완벽하게 준수해야 하는 부담이 커졌다는 것이다. 일부에선 “바디캠이 보급돼도 정작 현장에서 사용을 안 하려 들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2021년 인천 남동구 빌라 흉기 난동 사건이나 지난 7월 송도 사제 총기 사건처럼 경찰의 초동 대응이 문제시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바디캠 도입이 국민 눈높이에 맞춰 경찰의 현장 대응 능력을 끌어올릴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당장 일선 경찰관에게 부담이 될 수는 있지만, 이를 통해 보다 철저한 현장 대응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