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을 넘어 인생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준 남편에게 감사해요.”
경기 하남시에 거주하는 한진영(33)씨는 네 살 때 받은 심장 수술로 성인이 되고 나서까지 운동과 담을 쌓고 살았다. 학창 시절 체육 시간이면 운동장에서 떨어진 의자에 앉아 시간을 때우는 게 일상이었고, 20대가 되어서도 몸 쓰는 일에 도전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 한씨는 “4년 전 지금의 남편을 만난 게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고 했다.
한씨의 남편 김효석(34)씨는 2020년 마라톤에 입문해 시카고·시드니 등 해외 유명 마라톤 풀코스(42.195㎞)를 섭렵했다. 한씨는 연애 초기 그런 남자 친구를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활기를 얻었다고 한다. “(남자 친구가) 날이 갈수록 기록이 좋아지는 걸 보면서 저까지 덩달아 힘을 받았어요. 그러다 ‘동네 한 바퀴라도 같이 뛰자’는 제안을 받았고, 이제는 부부가 돼 함께 풀코스를 뛰네요.”
작년 10월 26일 ‘마라톤처럼 인생의 어려움을 이겨내며 함께 달려가자’고 약속하며 부부가 된 두 사람은 26일 결혼 1주년을 맞아 참가한 춘천마라톤에서 풀코스를 완주했다. 이날 5시간 47분 10초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한 한씨는 “성인이 되어서도 운동을 멀리한 건 몸이 아닌 내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며 “마음의 짐을 덜어준 남편에게 감사하고, 앞으로도 10년은 더 ‘춘마’에 도전해 명예의 전당에 등재되고 싶다”고 했다.
2025 춘천마라톤(조선일보사·춘천시·스포츠조선·대한육상연맹 공동 주최) 현장에선 손을 잡고 나란히 달리는 신혼부부와 연인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달리기를 취미로 공유하며 연인이 되고, 부부의 연까지 맺은 이들에게 춘천마라톤 완주는 어려운 만큼 낭만과 행복이 배(倍)가 되는 도전이었다.
이날 풀코스를 완주한 김태훈(37)씨는 10㎞ 코스를 마치고 결승선에서 기다리던 아내 유정연(31)씨를 끌어안았다. 김씨는 “작년엔 직장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혼자 달렸는데, 올해는 아내와 함께 아름다운 춘천마라톤 코스를 달려 기쁨이 북받친다”고 했다. 6년 전 복싱장 회원과 관장 사이로 만나 지난 5월 결혼에 골인한 강주연(31)·김종명(43)씨 부부도 나란히 10㎞ 코스를 완주했다. 강씨는 “마라톤은 ‘혼자만의 싸움’이라고 생각했는데 둘이 뛰니 힘도 더 나고 감정도 더 돈독해진다”고 했다.
결혼식을 앞두고 춘천마라톤을 ‘버진로드’ 삼아 달린 예비 부부도 여럿 있었다. 다음 달 15일 결혼식을 올리는 김남웅(32)·이혜인(32)씨 커플이 그 주인공이다. 김씨는 “춘천마라톤이 딱딱한 상견례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어줬다”며 웃었다. “올 7월 양가 부모님을 모신 자리에서 여자 친구가 ‘무슨 대회인지도 모르고 엉겁결에 마라톤을 뛰게 됐다’고 해 어른들 웃음이 ‘빵’ 터지셨어요.”
이날 김씨는 풀코스를, 이씨는 10㎞ 코스를 완주하며 ‘결혼 예행연습’을 훌륭히 마쳤다. 김씨는 “고비마다 ‘이것도 못 버티면 결혼 생활은 어떻게 버티나’라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었다”고 했다. 5년 전 만난 여자 친구와 10㎞를 함께 달린 안혁주(32)씨도 내년 4월 결혼을 앞둔 각오가 남달랐다. 안씨는 “결혼 준비가 만만치 않지만, 춘마를 달린 추억을 잊지 않으면 어떤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