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와트와 해변 휴양지로 인기를 끌었던 캄보디아가 중국 범죄 조직의 주요 근거지로 떠오른 건 최근 3~4년 사이다. 중국 조직들은 그간 라오스·미얀마 등지에서 사기·납치·살해 등 흉악 범죄를 벌여왔다. 그런데 이 나라들의 단속이 대폭 강화되자 빠른 속도로 주무대를 옮긴 것이다.
이들은 ‘차이나 머니(중국 자본)’ 유입과 캄보디아 독재 정부의 묵인·지원을 업고 급속도로 성장해 왔다. 중국 조직들이 한국인을 주요 타깃으로 삼으면서, 한탕을 노리고 캄보디아를 찾는 한국 범죄자들도 덩달아 급증했다. 국제사회는 “중국 조직들이 호텔·카지노 등 관광 산업을 사기·인신매매 등과 결합하면서 산업화된 범죄 생태계를 구축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친중 캄보디아 정권의 권력형 부패
캄보디아의 권력형 부패는 범죄 확산의 핵심 배경으로 지목된다. 캄보디아는 훈 센(전 총리, 현재 상원 의장) 가문이 쥐락펴락해 온 세습 독재 국가다. 훈 센 집권기에 정·재계 유착과 상납 구조가 공고해졌다. 친중화하면서 중국계 조직의 활동을 사실상 묵인·방치해 왔다는 비판이 현지와 국제사회에서 이어지고 있다. 유엔 마약범죄사무소는 캄보디아의 온라인 사기 산업이 “정부 내 부패 네트워크의 비호 아래 성장했다”고 했다. 교민들 사이에서도 “범죄 단지는 공권력보다는 ‘뒷돈’ ‘연줄’이 좌우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훈 센 정권을 떠받치는 버팀목은 중국이다. 그는 베트남의 도움으로 집권했지만 이후 철저히 중국에 기대 왔다. 중국은 2013년 시작한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으로 항만·도로·공항 건설 자금을 퍼부었고, 캄보디아의 대외 부채 35% 이상이 중국 몫이다. 배긍찬 전 국립외교원 교수는 “훈 센 정권은 정치·경제·안보 전반을 중국에 의존해 동남아에서 가장 친중 성향이 강한 나라가 됐다”며 “중국 자본과 함께 카지노 산업이 팽창했고, 이는 중국 범죄 조직 유입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부패·저임금·인력난이 겹쳐 캄보디아의 치안 역량도 마비 상태에 가깝다. 지난 6월 발표한 국제앰네스티 보고서에 따르면 시아누크빌, 프놈펜 등 16개 지역에 있는 범죄 단지 53곳 중 정부 개입 뒤 폐쇄된 것으로 보이는 곳은 단 2곳뿐이었다.
◇삼합회 등 중국계 폭력 조직 유입
이런 흐름 속에서 캄보디아 접경 지대와 주요 관광 지역이 삼합회(三合會) 등 중국계 폭력 조직의 근거지로 부상했다. 삼합회 일파인 ‘14K’는 2018년 남부 항구도시 시아누크빌에 ‘홍문그룹’을 세웠다. 마카오 출신 완 콕코이(尹國駒)가 세웠다. ‘부러진 이빨’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그는 삼합회 조직 두목이다. 범죄 단지에서 조직원들을 감금해 놓고 폭행·고문을 일삼으며 암호 화폐 교환·결제망을 통해 범죄 수익도 세탁해 왔다. 홍문그룹은 지난 2020년 12월 미 재무부 제재 명단에 올랐다.
프놈펜의 범죄 조직 ‘프린스그룹’도 부동산·카지노·금융 사업체라고 광고한다. 그러나 캄보디아 곳곳에 지어진 범죄 단지에서 한국인 등을 감금해 놓고 사이버 범죄와 인신매매를 벌인 혐의로 프린스그룹과 이 그룹 천즈 회장은 지난 14일 미국·영국 정부의 합동 제재를 받았다. 유엔은 캄보디아의 프린스그룹을 비롯해 캄보디아 전역에서 최소 10만명 이상이 온라인 사기 범죄에 동원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20일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프린스그룹은 한국 은행들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에 912억원의 예금 잔액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미국과 영국의 제재에 따라 한국 은행들도 해당 잔액을 동결해 입출금을 제한한 상태다.
◇한국 게이트성 자금도 캄보디아로
중국 조직들이 한국인을 주요 사기 대상으로 삼으면서 캄보디아를 찾는 한국 범죄자도 늘고 있다. 최근 캄보디아를 찾은 한국인 상당수는 귀국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무부에 따르면 2021년 113명이었던 캄보디아 출국자와 한국 입국자 수의 차이는 2023년 2662명, 2024년 3248명으로 급증했다. 중국 범죄 조직은 한국 조직원들에게 더 많은 월급을 준다. 아시아 국가 중 상대적으로 부유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사기 규모가 커 ‘프리미엄’이 붙는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파문을 일으킨 대형 ‘게이트’와 관련된 자금도 캄보디아로 흘러들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2019년 1조6000억원의 환매 중단 사태를 일으킨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는 실체가 불분명한 캄보디아 개발 사업에 1억달러를 투자했으나 자금의 행방은 묘연했다. 최근에도 통일교와 희림종합건축사무소가 ‘건진 법사’ 전성배씨를 통해 메콩강 부지 개발과 신공항 건설 등 캄보디아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청탁한 혐의로 김건희 특검팀 수사를 받고 있다.
한국은 올해에만 캄보디아에 ODA 예산 4000억원 이상을 투입했다. ODA 협력국 가운데 지원 폭을 가장 크게 늘린 셈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시엠레아프 앙코르와트 복원 사업 등 한국의 대형 지원 프로젝트 등을 재외 국민 안전 대책 수립과 연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