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의 한 초등학교 3학년 이모(9)양은 지난달 말 치러진 반장 선거를 위해 여름방학 한 달간 강남 스피치 학원에서 ‘특별 교습’을 받았다. 연설문 작성과 유세 연설 연습, 카메라 모니터링 등을 진행하는 데 시간당 17만원. 국·영·수 학원보다도 비쌌지만 몇 달 전부터 대기한 끝에 겨우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스피치 학원은 이양을 위해 ‘학급 내 새 청소용품 배치’ ‘학생들 이름이 돋보이는 특별 이름표 제작’ 등 맞춤형 공약을 만들어줬다. 연설 원고도 대신 작성해줬고, 카메라가 설치된 학원 강당에서 연설 연습도 진행됐다. 선거 당일 이양은 학원이 준비해준 새 청소용품과 반 친구들 이름표를 준비해 가져갔고, 준비한 대로 연설도 실수 없이 끝냈다. 결국 다른 후보들을 누르고 반장에 당선됐다.

당선 실적 홍보하는 학원 2일 서울 강남구 스피치 학원에 초등학교 전교 회장 등 당선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강지은 기자

가을 학기를 맞아 전국 초등학교에서 반장·부반장 선거가 치러지는 가운데, 강남 학부모들 사이에서 ‘선거 대비 과외’가 인기를 끌고 있다. 입시에서 반장이나 회장 당선 경력을 필수 코스로 여기는 분위기 때문이다. 일선 교사들은 “요즘 강남 초등학교 반장 선거 열기가 지방선거, 총선 못지않다”며 “선거철에 햄버거와 콜라 한 번 돌리고 당선되는 건 옛말”이라고 했다.

통상 학급 임원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선발한다. 주로 매 학기 초 반장 2명(남녀 각 1명), 부반장 2명 등 4명을 뽑는다. 강남의 스피치 학원들은 여름방학 시즌 일제히 ‘임원 선거 대비반’을 연다. 기초 발성 연습과 제스처(몸짓), 시선 처리 연습을 시켜주고 학교별 맞춤형 공약까지 만들어준다. 사립 초등학교는 학습 정리 노트를 공유하는 등 학습 관련 공약이, 공립초는 생활 편의 공약이 인기다. 회당 수업료는 10만∼17만원. 한 달 들으면 60만원이 훌쩍 넘는다. 전교 회장 선거는 강의 횟수가 많아 비용이 더 뛴다.

서울 강남의 한 스피치 학원 원장은 본지 통화에서 “매 학기 임원 선거 관련 문의 전화만 30~40통이 온다”며 “기본적인 연설 실력 향상을 위해 학급 선거 최소 세 달 전부터 일반 코스를 먼저 수강하는 것을 권한다”고 했다. 2일 찾은 이 학원 외벽에는 ‘○○초 회장(반장) 당선’ 등의 벽보가 20장 넘게 붙어 있었다. 강남의 일부 학원은 내년도 반장 선거 대비반 예약을 받고 있다.

그래픽=정인성

강남 지역 초등학교 반장 선거가 과열되는 건 학부모들 사이에서 학교 임원 경력이 중고등학교·대학교 입시에 도움이 될 것이란 분위기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2025학년도 전국 특목·자율형 사립고 중 전국 최고 경쟁률은 외대부고로 2.68대 1이었다. 면접을 통해 학생을 뽑는 청심국제중도 올해 입학 경쟁률이 21.6대 1로 개교 이래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대입에도 리더십 등 비교과 부문을 중시하는 전형이 늘면서 학교 임원 경력이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 서울 강남 초등학교 학부모 A(35)씨는 “반장을 했다고 하면 친화력이 있는 아이로 인식돼 학년이 올라가도 선생님은 물론 다른 학생들에게 주목받기 쉽다고 들었다”고 했다.

5·6학년 학생 중 남녀 1명씩을 뽑는 전교 회장 선거는 더욱 치열하다. 회장 경험이 있는 경우 ‘적극적’ ‘교우 관계 원만’ 등 긍정적 표현이 생활기록부에 적힐 가능성이 크고, 자기소개서를 쓰는 데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전교 회장에 출마하는 학생들은 수능 준비하듯 연설부터 공약까지 공들여 준비한다”며 “학원 도움을 받는 티가 난다”고 했다.

이 때문에 강남 지역 초등학교들은 ‘선거 과열’을 막기 위한 대책을 고심하고 있다. 사전에 학생들에게 홍보 벽보나 선거 공약 요약서를 받아 부모 재력이 드러날 수 있는 발언 등을 규제한다. 소품을 가져오지 못하게 하는 학교도 있다. 대부분 학교는 친구들에게 음식을 돌리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학교의 ‘제재’에 일부 학부모가 반발하면서 학교와 학부모 간 갈등도 커지고 있다. 최근 강남구 한 초등학교에선 전교 회장에 출마한 학생이 학교 측과 협의 없이 ‘학교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는 공약을 냈다. 학교가 과도한 공약이라며 수정해달라고 했지만, 학부모가 교육청에 ‘국회의원도 실현 불가능한 공약을 내는데 아이들은 왜 안 되느냐’는 취지의 민원을 넣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