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의심 차량이 전신주를 들이받고 도주 중입니다!”
지난 6월 9일 오후 10시 8분 경찰에 다급한 신고 전화가 접수됐다. 서울 광진구 아차산역 사거리에서 검은색 SUV 차량이 전신주를 들이받고 전·후진을 반복했다. 인도까지 넘어온 차량은 행인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간 뒤 그대로 도주했고 위험천만한 운전은 계속됐다. 경기 구리시 방면으로 비틀대며 달리던 차량은 급정거와 불법 유턴을 반복했고 중앙 버스 정류장을 침범하기도 했다.
인명 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던 도주 행각은 17분 뒤 막을 내렸다. 도주 차량을 10분 넘게 추격한 끝에 앞질러 가로막은 회색 SUV 차량 덕분이었다. 곧이어 따라붙은 경찰은 도주 차량을 둘러싸 운전자를 체포했다. 70대 남성 운전자 A씨는 경찰 음주 측정 결과 면허 정지 수준의 만취 상태였다.
검거의 주역인 회색 차량 운전자는 경찰이 아니었다. 소방학교 교육을 마치고 함께 귀가하던 강동소방서 김동연(25) 소방교와 길동119안전센터 최우식(38) 소방사였다. 두 소방관은 A씨 차량이 전신주를 들이받는 순간 음주 상태임을 직감하고 추격을 시작했다. 김 소방교가 차량을 모는 동안, 최 소방사는 옆에서 경찰에 실시간으로 경로를 알렸다. 차량 경로를 예측해 광진구의 한 호텔 앞에 경찰차를 대기시킬 것을 경찰에 요청하기도 했다. 실제 도주 차량이 이 부근을 지나자, 경적을 울려 경찰차에 신호를 줬다.
김 소방교는 본지 인터뷰에서 “작년 이맘때쯤 구급대원으로 일할 때 음주 운전 차량에 치여 중상을 입은 분을 조치했던 기억이 나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고 했다. 최 소방사도 “‘이러다가 누군가 다치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며 “근무 외 시간이지만 시민 안전을 책임지는 공무원으로서 당연한 일을 한 것”이라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소방관들의 기지로 더 위험한 상황을 빠르게 막을 수 있었다”고 했다.
한편, 경찰은 A씨를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및 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입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