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얼굴에 있는 푸른 반점이요? 아이들에게 보여주려고 화장도 일부러 안 했어요.”
지난 5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팔에 주삿바늘을 꽂고 연두색 환자복을 입은 아이 3명이 피아노 반주에 맞춰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부르고 있었다. 장기간의 항암 치료에 머리카락이 다 빠졌지만 아이들은 웃고 있었다. 이날은 소아암 병동 환자들이 음악 수업을 받는 날이다. 피아노를 연주하던 선생님 김민지(27)씨의 왼쪽 얼굴은 가로 4cm 세로 7cm의 파란 반점으로 덮여 있었다.
삼성서울병원은 지난 3월부터 매주 목요일마다 소아암 병동 어린이 환자들을 위한 음악 치료 수업을 열고 있다. 이 수업의 선생님인 김씨도 소아암을 앓았었다. 두 살 때 백혈병 진단을 받아 1년간 혈액암 중환자실에서 지냈다. 김씨가 네 살이 되던 해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김씨의 얼굴에는 푸르스름한 반점이 남았다.
학창 시절만 해도 소아암의 흔적이었던 반점이 부끄러웠다. 김씨는 “암으로 생긴 반점을 가리기 위해 500원짜리 싸구려 화장품을 사서 ‘경극 배우’처럼 얼굴을 허옇게 화장하기도 했다”고 했다.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며 김씨를 끊임없이 끌어안은 건 김씨의 아버지였다. 기타 연주가 취미였던 아버지가 김씨를 위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 줬다. 애창곡 서울대 트리오의 ‘젊은 연인들’이란 노래였다. ‘이 세상 모든 것/내게서 멀어져 가도/언제까지나/너만은 내게 남으리’라는 가사가 여전히 김씨의 마음속에 남아있다. 김씨가 음악 치료사 자격증을 취득한 것도 아버지 덕분이다.
김씨가 삼성서울병원을 찾아 소아암 환자를 처음 만나기 시작한 건 올해 2월이었다. ‘암 생존자’로서 초청 강연을 처음 열었는데, 소아암 병동 어린이들이 “음악 선생님 또 불러주세요”라며 김씨를 계속 찾았다.
이날 수업에서도 손모(7)군은 아이돌 그룹의 노래가 나오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링거를 꽂은 팔을 흔들며 춤을 췄다. 손군의 어머니 이모(43)씨는 춤추는 아들을 바라보면서 “싸늘하고 어두운 병실에서 친구 없이 홀로 보내는 아이가 어두워질까 봐 두려웠다”며 “음악 수업 덕분에 아들이 조그만 추억을 남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김씨가 아이들에게 항상 들려주는 노래는 우효의 ‘민들레’라는 곡이다. “사랑해요, 그대. 있는 모습 그대로”라는 가사가 나오면 특히 아이들이 크게 따라 부른다. 김씨는 “남들과 달라 눈에 띄어도 우리는 모두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을 사람이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