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 있냐? 스킨십은 해봤고?… 그 말이 제 지옥의 시작이었어요.”
장모(30·여·부산 금정구)씨는 15년 전 당했던 그루밍 성범죄의 후유증을 지금도 앓고 있다. 중학교 3학년이던 2010년, 한 온라인 RPG게임에서 11살 연상의 남성과 알게 돼 오프라인에서 만난 것이 시작이었다. ‘남친 있냐’ ‘가슴이 커 보인다’는 말이 처음엔 관심으로 느껴졌다고 한다. 장씨는 당시 학교폭력에 시달렸고, 부모의 무관심 속에 정서적으로 매우 외로운 상태였다.
연인 관계로 시작된 만남은 곧 10년 넘게 성 착취를 당하는 지옥 같은 시간으로 변했다. 뒤늦게 자신이 겪은 일이 범죄였음을 인지하고 25세에 도망쳤지만, 가해자는 스토킹을 이어갔다. 결국 장씨는 6층 건물에서 투신을 시도했고, 현재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과 우울증을 앓고 있다. 그는 “온라인에서 당한 그 일이 범죄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고 말했다.
경찰청이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그루밍 성범죄는 최근 1년 사이 폭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 착취 목적의 대화를 처벌하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5조의2에 따른 발생 건수는 2023년 73건에서 2024년 202건으로 176% 증가했다. 검거 건수도 같은 기간 67건에서 166건으로 늘었다.
해당 범죄는 2023년 1월 18일 시행된 ‘공소장 및 불기소장에 기재할 죄명에 관한 예규’ 개정 이후부터 경찰이 통계적으로 별도 관리하고 있다.
피해자의 40%가량이 초등학생이었다. 2023년 기준 전체 피해자 73명 중 29명이 12세 이하, 즉 초등학생이었다. 이어 13세 이상 15세 이하가 34명, 16세 이상 20세 이하가 9명으로 나타났다.
피해자 박모(16)씨는 초등학교 6학년이던 12살 무렵, 카카오톡 오픈 채팅을 통해 7살 연상의 남성을 만났다. “코로나19 시기라 외로웠고, 그 사람이 날 진심으로 좋아해 준다고 믿었다”고 했다. 하지만 남성은 박씨에게 나체 사진과 영상을 찍도록 강요했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연락을 시도했다. 박씨는 4년이 지난 지금도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
가해자는 주로 SNS나 오픈채팅 사용에 익숙한 20~30대 청년층이었다. 2023년 기준 성 착취 목적 대화 혐의로 적발된 가해자 62명 중 42명이 19~30세로 전체의 약 68%를 차지했다. 경찰 관계자는 “대부분 온라인에서 아동·청소년의 감정과 외로움을 이용하는 수법”이라며 “젊은 층 가해자가 많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루밍 범죄가 오픈 채팅을 중심으로 퍼지자, 카카오도 칼을 빼들었다. 카카오는 지난 5월 19일, 아동·청소년 대상 성 착취 시도가 확인되면 해당 이용자를 카카오톡 전체 서비스에서 영구 차단하겠다고 발표했다. 기관이나 이용자의 신고 등을 통해 위반이 확인되면 재가입하더라도 오픈 채팅 등 주요 기능은 다시 사용할 수 없도록 제한된다.
카카오톡뿐 아니라, 모든 SNS는 온라인 그루밍의 통로가 될 수 있다. 중학교 3학년이던 이모(18)씨는 SNS X(옛 트위터)에서 2002년생 남성과 연락을 시작했다. 이씨는 “처음엔 친절하게 대해줬지만 시간이 지나자 가스라이팅과 모욕 발언이 이어졌다”고 회상했다. 그는 “심장을 후벼 파는 듯한 고통을 2년간 겪었다”며, 현재도 가해자의 연락 시도를 받고 있다고 했다. 이씨는 “당시엔 외로움에 받아줬지만, 어느 순간 그에게 의존하고 있는 내 자신을 보게 됐다”며 “성인이 돼서 독립하면 반드시 고소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진형회 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은 “아동·청소년 대상 온라인 그루밍 성범죄는 피해자가 이를 범죄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말하면 안 된다’는 인식 때문에 숨겨지는 경우가 많았다”며 “카카오 등 플랫폼의 제재 조치는 의미는 있지만, 가해자가 계정만 바꾸면 얼마든지 다시 접근할 수 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진 부회장은 “스마트폰을 통한 성범죄 유형을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형식적인 온라인 수업이 아니라, 실제 사례 중심의 피부에 와닿는 대면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