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에 있는 시비(詩碑)의 내용이 최근 논란이 됐다.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퍼스티지 단지에 있는 ‘영원한 파라다이스-래미안 퍼스티지’라는 비석이다. 우면산 정기 받고 한강의 서기 어려 장엄한 우리의 궁궐’ ‘겨레의 심장 되시는 고귀하신 가족들’ 같은 문장에 대해 온라인상에서 “비싼 아파트에 거주하니 고귀하다는 말인가” “천박한 문장이다” 같은 지적이 제기됐다. 이 아파트는 2009년 반포주공 2단지를 재건축한 곳으로 지난 7월 84㎡(34평)가 43억원에 거래됐다.
26일 본지 기자들이 찾은 아파트엔 논란이 된 비석 외에 유사한 시가 새겨진 시비가 하나 더 있었다. 주민 대다수는 시비의 존재 자체도 모르거나 내용을 거의 모르고 있었다. 주부 이모(49)씨는 “좋은 시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니고 사유지에 세워진 비석을 두고 과도한 논란 같다”고 했다. 10년 넘게 이곳에 거주한 직장인 조모(28)씨는 “학창 시절 자주 본 비석인데 시 구절이 너무 낯간지러워 철거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고 했다.
아파트 시공사인 삼성물산은 “2009년 준공 당시 재건축 조합의 결정으로 조성된 비석”이라고 했다. 당시 아파트 준공과 입주를 기념하려는 목적으로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영원한 파라다이스’ 원작자 구성달(79)씨는 “20년 전 재건축에 들어갈 때 주민인 내가 돈 한 푼 안 받고 조합에 투고한 것”이라며 “이제 와서 논란이 되는 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당시 주민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쓴 시”라고 했다.
실제 서울의 여러 재건축 아파트엔 비슷한 내용의 비석이 있다고 한다. 2019년 입주한 강동구 고덕동의 한 아파트에도 ‘꿈을 꾸었다. 아파트 조경의 신기원을 열겠다고’ ‘그 꿈은 어느 결에 사명이 되었다’ 같은 구절이 새겨진 시비가 있다. 역시 재건축 조합의 결정으로 조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