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 주민들 “이제 소아과 원정 안 가도 돼요” - 지난 6일 전남 곡성군 옥과면 옥과통합보건지소에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양헌영(오른쪽)씨가 아이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그는 곡성군의 첫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다. 곡성군은 고향사랑기부제를 활용해 ‘곡성군에 소아과를 선물하세요’ 모금 사업을 벌였고 지난달 27일 곡성 첫 소아과를 열었다. 아이 엄마들은 “차로 1시간 거리인 광주광역시 소아과까지 가서 ‘오픈 런’을 안 해도 돼 너무 좋다”고 했다. /김영근 기자

“새벽에 광주까지 달려가서 소아과 ‘오픈 런(문을 열기 전부터 줄을 서는 일)’을 안 해도 되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지난 6일 아침 전남 곡성군 옥과면 옥과통합보건지소. 태어난 지 6개월 된 아이를 안고 보건소를 찾은 엄마 임소희(30)씨가 웃으면서 말했다. 진료실 앞에는 ‘곡성에서 처음 만나는 소아청소년과’라고 쓴 안내판이 서 있었다.

이곳은 지난달 27일 곡성에 처음 문을 연 소아과다. 그동안 정형외과, 내과, 치과는 있었지만 소아과가 생긴 것은 처음이다. 의사 선생님은 광주광역시 병원에서 진료를 보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양헌영(43)씨다. 일주일에 두 번, 차로 1시간 거리인 이곳에 ‘출장 진료’를 온다.

다섯 살 아이 엄마 노하나(36)씨는 “애가 아파서 새벽에 광주 병원으로 달려가는데 시골 사는 게 참 서글펐다”며 “소아과가 생겼으니 이제 살 것 같다”고 했다.

곡성군의 인구는 2만7000명. 이 중 어린이는 1800여 명이다. 1960년대에는 군 인구가 10만명이 넘었는데 젊은이들이 도시로 빠져나가고 아이마저 줄어 이제는 ‘지역 소멸’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시골에서 의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군이 나서 소아과 전문의를 모시려고 했으나 시골 보건소까지 와서 일할 의사가 없었다. 광주, 순천 지역 소아과 전문의들의 연봉은 대략 2억원 수준인데 작은 군에선 의사를 모셔올 예산도 없었다.

이 때문에 곡성군 전체 통틀어 소아과 전문의는 없고 군 복무를 하는 공보의 1명이 읍내 의료원에서 소아과 진료를 본다.

전남 곡성군 옥과통합보건지소에 생긴 곡성 첫 소아청소년과 진료실의 입구. /김영근 기자

계기가 된 것은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시행한 ‘고향사랑기부제’다. 고향사랑기부제는 고향 등 현재 자기가 살지 않는 지자체에 기부금을 내고 지역 특산품 등 답례품과 세액공제 혜택을 받는 제도다. ‘지역 소멸’을 막아보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곡성군은 작년 1월 고향이음TF(태스크포스)를 꾸리고 기부금 모금에 나섰다. 작년 3월 고민 끝에 나온 아이디어가 “곡성에 소아과 의사를 모셔오는 기부금을 만들자”였다.

올 1월부터 ‘곡성에 소아과를 선물하세요’ 문구를 내걸고 기부금을 모으자 전국에서 기부금이 답지했다.

김하나 고향이음TF 팀장은 “도시로 나간 곡성 사람들이 ‘우리 고향에도 소아과 하나 만들어보자’ ‘나도 어릴 때 소아과가 없어서 힘들었다’면서 릴레이로 기부금을 보내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넉 달 만에 675명이 동참해 8000만원을 모았다. 종잣돈 8000만원 중 5000여 만원으로 보건소에 진료실을 꾸미고 어린이용 체중계 등을 샀다.

소아과 전문의 모시기는 쉽지 않았다. TF 팀원들은 작년 3월부터 광주, 순천 일대 소아과 전문의 20여 명을 직접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김 팀장은 “소아과를 있는 대로 검색해서 무작정 찾아갔다”며 “몇 번씩 찾아가 ‘소아과가 없어서 아이들이 한 시간 넘게 광주를 오가고 있다’고 애걸복걸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만났던 의사 20여 명이 전부 거절했다. 심세희 행복정책관은 “취지는 공감하지만 지금도 너무 바빠 어렵다고들 했다”며 “왕복 2시간씩 출퇴근해야 하는 점도 걸림돌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중 한 명이 지난 5월 TF에 전화를 걸어왔다. 지금 출장 진료를 보고 있는 양헌영씨였다. 양씨는 하루 30여 만원 수당을 받고 출장 진료를 본다고 한다. 진료를 하는 화요일, 금요일은 평소 양씨가 쉬던 날이다. 쉬는 날 ‘재능 기부’를 하는 셈이다. “처음에는 체력이 달릴 것 같아서 거절했는데 젊을 때 아니면 언제 또 해보겠습니까. 특별한 사명감 때문이 아니에요. 아이들이 좋아서죠.”

양씨는 진료실에서 쑥스러운 듯 웃었다.

곡성군은 최근 상주(常駐) 소아과 전문의를 모시기 위해 ‘곡성에 소아과를 선물하세요 시즌2′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소아과 전문의의 1년 연봉 2억5000만원을 모으는 게 목표다. 졸업 후 5년간 곡성에 근무하는 조건으로 의대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시즌3′도 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