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중 소리 질러도 괜찮아요.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세요”
지난 2일 오전 11시쯤 찾은 서울 금천구의 금나래아트홀 갤러리. 극단 ‘북새통’의 한 배우가 작품 ‘똑, 똑, 똑’의 상연을 앞두고 관중에게 주의사항을 설명하고 있었다. 이날 객석은 서울 탑동초와 문교초 특수반 학생 18명과 인솔 교사 7명이 채웠다.
공연이 시작했는데도 특수반 학생 일부는 카펫이 깔린 바닥에 드러눕거나, 소리를 지르며 공연장으로 쓰인 20평 남짓의 갤러리를 뛰어다녔다. 하지만 극단 배우 5명은 관중을 제지하지 않고 같이 뛰어다니거나, 눈을 맞추고 학생들을 안아줬다. 악기 연주 소리가 커서 귀를 막는 아이들이 있으면 주황색 조끼를 입은 안전요원들이 헤드셋을 가져와 아이에게 씌워주기도 했다.
이 작품은 발달장애 어린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공연이다. 땅속 씨앗이 봄날을 맞아 싹을 틔우는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2021년 초연돼 지금까지 공공기관·특수학교 등에서 50차례 넘게 상연됐다고 한다.
특히 이 공연은 관중들이 직접 배우들과 함께 공을 두드리고 굴리거나, 춤을 추고 노래하며 작품에 참여하는 것이 특징이다. 지난 2019년부터 3년 동안 이 작품을 연출한 남인우(50) 감독은 “자폐 스펙트럼 등을 앓는 지적 장애인도 낯설어 하지 않는 공연 환경에서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는 ‘릴렉스드 퍼포먼스’”라며 “불편해하는 관중이 없는지 배우들이 면밀히 살펴야 해 관중 규모도 30명을 넘지 않는다”고 했다.
남 감독은 “3년 동안 공연을 만들며 발달장애인과 뇌 신경학자를 만나 발달장애 아동에 대해 공부했다”며 “여러 도형이 섞여 있는 것만으로도 불안해하는 자폐 아동의 특성을 고려해 소품도 공, 훌라우프처럼 원형으로 된 것들만 준비해 세세한 부분에도 주의를 기울였다”고 설명했다.
이 공연의 김진희(48) 총괄 PD는 “배우들의 얼굴과 소품 모양, 노래와 춤 동작을 설명한 안내 책자를 우편이나 모바일로 보내준다”며 “너무 들뜬 나머지 종종 배우들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는 아이들도 있는데, 안전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 요원들이 관중들을 꼼꼼히 살핀다”고 했다.
이날 공연을 관람한 서울 문교초의 특수반 교사 정지영(39)씨는 “아이들은 공연장·영화관 등에서 한 자리에 오래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한다”며 “아이들이 공연장에서 맘껏 뛰어놀다 보면 학교로 돌아가기 싫어할 만큼 공연을 좋아하더라”고 했다.
금천문화재단 관계자는 “이달 2~4일 동안 진행된 3회의 공연이 모두 매진이 될 만큼 북새통 공연이 인기를 끌었다”며 “3일 중 2일은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상연됐는데, 매진된 후에도 공연을 관람하고 싶다는 학교 측 문의가 이어졌다”고 했다.
이 작품은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아시테지(ASSITEJ)’가 3년에 한 번씩 개최하는 ‘아시테지 세계총회 및 공연 예술 축제’에 초청을 받아 이달 28~29일 양일 동안 쿠바 아바나에서 상연된다. 올해는 21회째를 맞는데, 70여개 이상의 국가 출신의 예술가 1000여명이 참석한다. 아시테지의 공식 초청을 받아 상연되는 25개 작품 중 아시아 작품은 북새통의 ‘똑, 똑, 똑’이 유일하다.
앞서 지난 2008년에도 북새통은 극단의 첫 작품인 ‘가믄장 아기’로 호주에서 열린 아시테지 세계축제에 초청받았다. 가믄장 아기는 제주도 전통 신화인 ‘삼공본풀이’를 재해석한 연극으로 여성의 주체적인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가믄장 아기로 데뷔했던 북새통의 배우 김소리(46)씨는 “16년만에 다시 찾는 세계 축제인데, 쿠바 관객들이 우리 작품에 어떻게 반응해줄지 기대 반 걱정 반”이라며 “우리 작품이 발달장애 아동에 대한 관심을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