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노트]는 부장검사 출신 김우석 변호사가 핫이슈 사건의 법률적 의미를 풀어주고, 수사와 재판 실무도 공개합니다. 이가영 기자가 정리합니다.
지난 1일 장애 학생을 가르치는 특수교사가 웹툰작가 주호민씨의 자녀를 학대한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벌금 200만원 선고를 유예하는 판결이다.
특수교사는 ‘정당한 학생 훈육’이었다면서, 주씨 측이 수업 내용을 몰래 녹음한 파일은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주씨 측에서는 교사가 아들에게 심한 말로 학대를 한 건 사실이며, 선처하려 했지만 무리한 요구를 해와 재판에만 집중했다고 반박했다. 판결 이후 여론은 양분되는 모양새다.
팽팽한 양측의 다툼, 판사는 왜 이런 판결을 내린 것일까.
◇선고유예, ‘한번은 봐 준다’는 뜻
Q: 선고유예는 ‘무죄인 듯 유죄 같은 선고’라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A: 선고유예란 쉽게 말하면 ‘정상 참작해서, 판사가 한 번은 봐주겠다’는 뜻입니다. 선고할 형량이 1년 이하의 징역·금고, 자격정지 또는 벌금인 경우, 판사는 정상을 참작해 선고를 유예할 수 있습니다.
유예기간(2년) 동안 자격정지 이상의 형벌을 받지 않으면 소송절차가 종료된 것으로 간주합니다. 즉, 처벌 면제 효과가 생기는 것입니다.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선고유예는 어려워
Q: 주호민 작가 측은 교사를 처벌해 달라고 요구했는데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선고유예를 할 수도 있나요?
A: 범죄를 처벌하지 않을 만큼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선고유예 판결을 합니다. 그래서 실무상 극히 예외적이고, 거의 활용되지 않습니다. 특히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는 경우에는 통상 선고유예를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서 판사는 “특수교사의 발언이 대체로 교육·훈육을 위한 것이었고, 그동안 성실히 근무해 동료·학부모들이 선처를 탄원하는 점 등을 참작해 선고유예 한다”고 밝혔습니다. 예외의 예외에 해당하는 희귀 사례인데, ▲기소 내용 중 일부만 학대로 인정된 점과 ▲몰래 녹음된 특수교사 발언의 취지와 경위를 종합해 고려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발언에 대한 판단은 앞뒤 상황, 뉘앙스 등 종합
Q: ”아 진짜 밉상이네. 도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는 거야” 같은 발언은 정서적 학대라고 볼만한 발언인데요. 왜 학대가 아니라고 판결한 건가요?
A: 사람의 말은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발언 경위, 앞뒤 상황, 말투, 뉘앙스 등을 종합해야만 그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바보야!”라는 말이 멍청하다는 뜻도 되지만, 순수하다는 뜻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재판부는 특수교사의 발언 녹음을 직접 듣고 전후 상황, 발언 취지를 종합 판단해서 학대로 보기 어려운 부분은 배제한 것입니다.
◇교사의 사과는 판결에 큰 영향 줬을 것
Q: 주호민 작가는 특수교사의 변호인으로부터 ‘특수교사의 사과를 받았고, 특수교사는 학대 고의가 없었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사과문을 요구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사과문이 정말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나요?
A: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했는지, 피해자의 용서를 받았는지는 형량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용서가 없다면, 선처도 어렵겠지요. 용서를 못 받으면 실형이 선고되기도 합니다.
또한, 주씨 측에서 ‘특수교사에게 학대 고의가 없었다’고 확인해주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고의가 없으면 학대 범죄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피해자가 판사에게 “가해자는 무죄”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판사가 선처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겠지요. 무죄라고 판단할 수도 있고요.
◇대법원 ‘몰래 녹음’ 증거 불인정 판례, 왜 적용 안됐나
Q: 대법원은 올해 1월 ‘학부모가 학생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선생님 수업을 몰래 녹음한 경우, 그 녹음파일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는 증거로 사용됐습니다. 이게 가능한가요?
A: 타인의 비공개 대화를 제3자가 몰래 녹음하는 건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금지됩니다. 대화의 비밀과 자유를 보호하는 겁니다. 수업 중 교사의 발언은 교실의 학생들에게만 공개된 것이니 학부모는 제3자입니다. 따라서, 학부모가 이를 몰래 녹음하는 것은 불법이고 재판 증거로 사용 못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대법원은 이에 따라 일반 학생 교실에서 한 교사의 발언을 학부모가 몰래 녹음한 건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원칙만 고수하다가는 현실과 동떨어진 결론이 날 수도 있기에 법률은 예외를 인정합니다.
중증 자폐 학생은 제대로 의사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몰래 녹음하는 걸 무조건 금지하면 자폐 학생들이 교사로부터 학대 피해를 입은 경우 이를 적발하기 어렵고 피해를 막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법원은 ‘진실 발견’이라는 공익과 ‘비공개 대화 보호’라는 사익 중 어떤 것을 더 지켜야 하는지 비교해서, 공익적 필요가 더 큰 경우에는 몰래 한 녹음도 증거로 사용하는 예외를 허용하기도 합니다.
이 사건 재판부는 주씨의 아들이 자폐가 있다는 점을 참작해 부모의 녹음파일을 증거로 채택했습니다.
◇ “판사의 고민 묻어난 판결”
Q: 관심을 많이 받았던 재판입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A: 이 사건 판결에는 판사의 고민이 묻어납니다. 선고유예도 이례적이고, 몰래 한 녹음을 증거로 채택한 것도 이례적입니다. 정서적 학대는 물리적 학대와 비교했을 때 맞다, 아니다를 가리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재판부는 장애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의 눈물과 특수교사의 분투까지 모두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서로 상처를 입고 마음이 상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법을 떠나서, 더 좋은 방향으로 해결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