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경북 의성군 보건소 창구엔 어르신만 10여 명 앉아 있었다. 신영훈(79)씨는 “혈압약과 혈당약을 처방받으러 왔다”며 “다리와 발이 저려서 골밀도 검사도 받아보려 한다”고 했다. 옆에 있던 황말순(86)씨는 “입안이 서늘하고, 체한 느낌이 들어서 왔다”고 했다. 한방 공보의 신민철(27)씨는 “환자 연령대는 대부분 70~80세이고, 제일 젊은 환자가 40세”라며 “한방 진료를 받으려는 어르신이 특히 많다”고 했다. 의사 전온유(33)씨는 “환자 중 70% 이상이 65세 이상이라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으로 찾는다”고 했다.
보건소 4층에선 치매 예방 수업이 한창이었다. 어르신들은 화투 그림으로 퍼즐을 맞추고 있었다. 김잘순(82)씨는 “매주 한 번씩 2시간 넘도록 화투를 치곤 하기 때문에 늘 보던 그림인데도 맞추려면 20분씩 걸린다”고 했다. 친근한 그림·디자인을 활용하면 어르신 기억력과 사고력 유지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노인장기요양보험, 치매 안심 병원 등 어르신을 위한 프로그램 안내문만 수두룩했다.
인구 45%가 65세를 넘긴 의성군은 시장과 마트 모습도 도시와는 달랐다. 의성시장 120m 거리를 걷는 100여명 대부분은 ‘실버카’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다. 고모(80)씨는 “이것(실버카) 없으면 일상생활을 못 한다. 주변에 천지”라고 했다. 실버카에 대파 등을 실은 김순하(68)씨는 “2~3년 전부터 허리에 힘이 없고 아파서 ‘허리 끈’을 사러 왔다”고 했다. 시장 상인 중 막내라는 김영주(55)씨는 “다른 지역에선 만두와 족발을 팔았는데 이곳으로 옮긴 뒤엔 어르신들 입맛과 치아 상태에 맞도록 부드러운 카스텔라와 팥빵, 경주빵 등을 팔고 있다”고 했다. 50년째 뻥튀기 장사를 한다는 권오종(83)씨는 “나이 든 사람들이나 옛날 생각이 나서 한번씩 사 먹지 젊은 사람은 구경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단촌면의 한 마트엔 초등학생들이 쓸 만한 문구류가 하나도 없었다. 토박이인 김귀향(55)씨는 “공책, 노트, 연필 등도 팔았는데 아무도 사 가지 않아 할아버지들이 좋아하는 낚시용품 코너로 바꿨다”고 했다. 문구류가 있던 자리엔 낚싯대와 모형 지렁이 등이 놓여 있었다. 경북도는 ‘의성 소멸’을 막으려고 2019~2022년 국·도비 등 1280억원을 투입했지만 역부족이었다. 1990년대만 해도 10만명이던 인구는 5만명으로 반토막났다. 재작년 사망자가 1128명으로 출생자 193명을 6배 앞질렀다. 2040년 의성군의 인구 중간 나이는 70세를 넘길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해 찾은 경북 영덕군 창수면은 오후 6시만 돼도 동네 불이 모두 꺼졌다. 미용실도, 옷 가게도, 술집도 없다. 식당 7곳도 석양이 지면 문을 닫는다. 인구는 1980년 7000여 명에서 1500여 명으로 줄었다. 주민 전모(56)씨는 “동네에 20대 청년 두 명이 있는데 둘 다 ‘영농 후계자’로 귀향한 것”이라며 “계속 사는 것은 아니고 대구 같은 큰 도시를 왔다 갔다 한다”고 했다. 학교는 창수초등학교가 유일하다. 중학교는 2009년 문을 닫았다. 3곳인 보건소와 보건지소에선 소아과와 산부인과 진료는 하지 않는다. 아이가 아프면 버스로 1시간 넘게 걸리는 영해면의 내과 의원까지 가야 한다. 주민 김모(47)씨는 “교육과 병원 문제로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다들 떠나고 있다”고 했다. 농장을 한다는 한 주민은 “일꾼으로 동남아 출신 젊은 남자 20여 명을 데리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일감이 줄면 떠날 사람들”이라고 했다. 만 20~39세 여성 비율이 65세 이상의 20% 미만이면 ‘소멸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되는데, 경북 의성군과 영덕군 등이 대표적이다.
18일 이철우 경북지사는 도청에서 전 직원과 예비 부부, 저출생 전문가 등 300여 명과 4시간 동안 ‘저출생 극복 끝장 토론’을 벌였다. 신년 업무 보고에서 다른 분야는 전부 제쳐두고 ‘저출생’만 주제로 삼은 것이다. 이 지사는 “지금까지 저출생 정책은 전부 실패했다”며 “저출생 해결에 따라 경북은 물론 대한민국의 운명이 좌우될 것”이라고 했다.
경북도는 이날 전 직원 아이디어를 모아 저출생 정책 과제 266개를 제시했다. 결혼할 때 연 1% 금리로 3억원을 빌려주고 3년 내 자녀 1명을 낳으면 1억원, 6년 내 2명을 출산하면 3억원 전부를 변제해 주자거나, 미분양 주택지에 집을 지어 ‘출산 조건부’로 최대 38년간 무상 임대하자는 아이디어 등 파격적 내용이 많았다. 무상 임대는 약 150억원을 들여 도청 인근 단독주택 단지에 29평형 주택 50채 정도를 지어 ‘아이 돌봄 타운’으로 조성하는 방식이다. 교통이 편리한 김천혁신도시에 서울 강남 학원들을 유치해 사교육 타운을 만들자는 제안도 나왔다. 이 지사는 “우선순위를 나눠 추진을 검토할 것”이라며 “생존을 위해 판을 뒤엎는 대혁신이 필요하다”고 했다.
경북도는 저출생 대책의 키워드로 ‘집’과 ‘양육’을 제시했다. 양육 대책으로는 돌봄 교육을 받은 할아버지·할머니에게 월 40만~70만원 수당을 주고 아이를 맡기는 ‘할보미’ 정책 등을 거론했다. 초고령화와 초저출산 문제를 연계해 풀어보자는 것이다. 이철우 지사는 “도청 인근 신도시에 주택과 돌봄 정책을 결합한 ‘저출생 극복 시범도시’를 만들어 그 효과를 보면서 경북도 전체로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