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호 기자

“백지 상태에서 시작해도, 열심히만 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들어도 결국 되더라고요.”

이달 중순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태블릿 PC 그림 작가 유재순(89)씨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여유재순’이라는 필명으로 활동 중인 유씨는 태블릿 PC로 그린 그림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젊은 세대와 소통한다. 인터넷에서 찾은 꽃, 나무, 풍경 그림을 주로 그린다.

‘여유재순’은 유씨가 최초 인스타그램 회원 가입 당시 성(姓)을 적는 란에 자신의 성(性)인 ‘여(女)’를 적고, 이름난에 ‘유재순’을 넣어 실수로 만들어진 필명이다. 유씨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팔로어를 ‘손님’이라고 부른다. 유씨가 지난 2020년 10월부터 지금까지 올린 그림은 1055점, 팔로어는 약 3만8000명이다.

유씨의 인스타그램 팔로어 대부분은 그를 ‘할머니’라고 부르는 젊은 세대다. “항상 할머니 그림 보고 치유받습니다” “할머니 그림은 최고예요” 등 댓글에 유씨는 일일이 ‘고마워요’라는 답글을 달았다. 유씨는 “점점 나이가 드니 돋보기를 써도 화면 속 글자가 잘 안 보인다”며 “처음에는 ‘고맙습니다’라고 답글 달던 것을 줄여 ‘고마워요’로 바꿨다”고 했다.

유씨는 10년 전 동네 주민센터에서 컴퓨터를 처음 배웠다. 컴퓨터 켜는 법조차 모르던 탓에 강사에게 “꼭 컴퓨터를 배워야 하시냐”는 말도 들었다고 한다. 유씨는 “수업 들을 때마다 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수업을 따라가려고 열심히 노력했다”며 “수업 후 집에 돌아와서는 그날 배운 걸 메모하고 복습했다”고 했다. 태블릿 PC로 그림 그리길 시작한 건 3년 전이다. 컴퓨터를 가르쳐 준 주민센터 강사가 유씨의 그림 실력을 눈여겨보고 추천했다고 한다. 유씨는 태블릿 PC를 구입한 뒤, 동영상 강의를 찾아보며 그림 그리는 법을 익혔다.

그는 “부족한 실력에 기초도 없이 그린 그림을 사람들에게 보여줘 늘 미안했다”며 “손님(팔로어)들의 따뜻한 반응을 볼 때 태블릿 PC 그림 시작하길 잘했다고 느낀다”고 했다. 그는 집 근처 미술 학원에서 3개월째 그림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