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 최종 PT 영상에 등장한 가수 싸이./ YTN 유튜브

“부산을 홍보하는데 무슨 서울 강남스타일?” “유명인 많으니 한표 달라 이건가”

2030년 부산 세계 박람회(엑스포) 유치 실패 속에서 한국 유치위원회의 최종 프리젠테이션(PT)이 온라인에서 혹평을 받고 있다. ‘부산의 매력’이나 ‘한국의 역할’ 같은 메시지가 불분명한 상태로 K유명인·K유명곡만 앞세웠을 뿐더러, 연사 선택부터 전략없이 뻔한 인사들로 채워졌다는 비난이었다. 한 네티즌은 이렇게 썼다.

“사람들이 PT 하나 때문에 화를 내는 게 아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PT 보는 순간 그동안 어찌해왔을지가 눈에 선하게 보이더라.”

이날 한국은 총회에서 가장 먼저 PT를 진행했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시 캐릭터 부기, 글로벌 서포터즈 5명과 함께 무대에 올라 부산을 소개하며 문을 열었다. 이어 나승연 부산엑스포 홍보대사,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한덕수 국무총리,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 5명이 차례로 연사로 나서 한 표를 호소했다.

네티즌 원성이 집중된 건 33초짜리 최종 PT 영상이었다.

영상은 큼지막한 숫자 ‘1′과 함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흘러나오면서 시작한다. 이어 지휘자 정명훈, 소프라노 조수미, 가수 김준수, 아이돌 몬스타엑스, 태민, 드림캐쳐, 싸이 등 8명이 줄줄이 등장해 “유어 초이스” “온리 원 초이스” “부산”을 외친다. 마지막으로 배우 이정재가 “온리 원 초이스 부산”이라고 말하며 불꽃놀이 영상으로 마무리된다.

영상을 두고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비판이 쏟아졌다. “연예대상 시상식 홍보 영상이냐” “대학생 과제도 이렇게는 안 한다” 등이었다. X(옛 트위터)에도 패러디물이 줄줄이 올라왔다.

여권 성향 커뮤니티인 ‘에펨코리아’와 ‘엠엘비파크’도 다르지 않았다.

“엑스포를 왜 유치하는 지, 한국이 다른 나라들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전혀 드러나 있지 않다” “삼성 반도체, 현대 전기차, 네이버 메타버스 내세울 게 많은 데 저런 무리수를 둔 건가” “한국은 케이팝 빼고는 소재가 없나” “‘두유노클럽’ 정기모임 PT냐” 등이었다. ‘두유노’란 ‘Do you know Psy?’(싸이 아세요?)처럼 외국인에게 한국의 유명인, 유명곡을 아냐고 물어본 뒤, “안다”는 답변을 들으면 공연한 만족감을 느끼는 심리를 비웃는 표현이다.

2012년 7월 발매한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PT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것을 두고도 조롱이 쏟아졌다. 세계적으로 유명하단 이유만으로 개최지 부산과는 전혀 상관 없는 음악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10년이 지나도 두유 노 싸이냐” “부산에서 여는데 강남스타일을 왜 사용하나” “고위층에서 싸이가 유명하니까 넣으라고 한 것 같다”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한 네티즌은 “영상 보면서 민주당이 선전선동에 능한게 아니라 국힘이 무능한거구나 느꼈다”고 했다.

2030 엑스포 유치 최종 PT영상에 대한 네티즌 반응/ 'X'

이에 반해 이탈리아와 사우디는 전략적인 PT로 장군멍군을 날리며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연사 선택부터가, 국내에서나 유명한 소위 ‘정·재계 고위인사’로 연사진을 대부분 채운 한국과는 달랐다.

먼저 이탈리아가 선공을 했다. 연사 4명 모두를 여성으로 배치했다. ‘여성 인권’이 약점으로 꼽히는 사우디를 겨냥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세계적인 뮤지션 스팅의 아내이자 배우인 트루디 스타일러와 배우 겸 가수 사브리나 임파차토레가 PT를 한 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영상 메시지로 인사를 남겼다. 마지막은 패럴림픽 펜싱 선수인 베아트리체 베베가 마무리했다.

하지만 사우디는 예상이나 한듯 받아치는 모양새였다. 파이살 빈 파르한 외교부 장관이 첫 연사로 나와 유치 희망을 전한 뒤 나온 연사 2명을 잇달아 여성으로 배치했다.

사우디 엑스포 유치팀 직원인 알 쉬블이 현지시각 28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BIE에서 사우디 리야드 엑스포 유치 PT에 나서다 흘러내린 히잡을 다시 쓰고 있다. /채널A

사우디의 엑스포 유치팀 소속 기다 알 쉬블과 BIE 사우디 측 대표 하이파 알 모그린 공주는 히잡을 쓰고 나와 사우디와 리야드 홍보에 나섰다.

히잡은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인 사우디에서 좀처럼 찾아 보기 힘든 의상이다. 사우디 여성들은 보통 눈 빼고 모두 가리는 니캅을 착용한다. PT 도중 알 쉬블의 히잡이 흘러내리기도 했는데, 알 쉬블은 자연스럽게 다시 히잡을 쓰는 모습까지 연출했다.

6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은 운전조차 할 수 없는 법이 있었던 나라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 전세계로 중계된 것이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29일(한국시각) 프랑스 파리 르 팔레 데 콩크레 디시(Le Palais des Congrés d’Issy)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제173차 총회에서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의 부산 유치 불발이 결정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그럼에도 온라인에선 PT영상에 지나치게 민감할 필요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 “어차피 PT 압살했어도 유치실패는 확정이라 큰 의미 없을수도 있다” “PT에 예민하신 분들은 학생인가요? 오일머니 투자는 못 당하죠” 등이었다.

실제로 사우디는 이번 2030 엑스포에 78억달러(약 10조원) 규모의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개발도상국을 상대로 투자 및 개발을 약속하기도 했다. 지난 9일 사우디개발기금은 12개 아프리카 국가에 5억8000만달러 규모의 개발 차관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오일머니 공세에다 1년 늦게 교섭 활동에 뛰어든 한국이 불리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