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호우로 사망 46명, 실종 4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해병대 A(20) 일병이 19일 경북 예천의 하천에서 실종자 수색 작전 와중에 급류에 휩쓸린 뒤 약 14시간 만에 숨진 채로 발견됐다. 지방정부의 부실 대응으로 14명이 숨진 충북 청주 오송의 지하차도 침수 사고에 분노하던 여론이 다시 들끓고 있다.

왜 이렇게 생명을 잃어야 하나 - 19일 오후 경북 예천군 호명면 고평교 인근에서 119 구조대가 실종자 수색 작전 도중 급류에 휩쓸렸던 해병대 A일병의 시신을 인양해 구급차로 옮기고 있다. A일병은 이날 오전 9시 3분쯤 지반이 무너지면서 급류에 빠졌고, 이후 약 14시간 만인 오후 11시 8분쯤 숨진 채로 발견됐다. /연합뉴스

A 일병은 이날 경북 예천군 내성천 일대에서 다른 장병들과 ‘인간띠’를 만들어 실종자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겐 구명조끼도 지급되지 않았다. 해병대의 특수성과 군(軍) 작전 수행이란 측면이 있었지만 많은 국민은 이를 용납하지 못했다.

해병대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3분쯤 경북 예천군의 내성천 보문교 일대에서 수색 작업을 하던 해병대 1사단 포병대대 소속 A 일병과 동료 장병들이 급류에 휩쓸렸다. 근처에 있던 2명은 수영을 해 빠져나왔으나, A 일병은 “살려주세요”라고 외치며 급류에 떠내려갔다고 해병대는 전했다.

사고 직후 현장을 찾은 A 일병의 부모는 오열했다. A 일병의 부친은 하천 수색에 나선 아들이 구명조끼를 입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물살이 셌는데 구명조끼는 입혔냐. 어제까지만 해도 비가 많이 왔는데 왜 구명조끼를 안 입혔느냐”고 했다. 그는 “구명조끼가 그렇게 비싼가요. 물살이 얼마나 센데”라며 “이것은 살인이 아닌가”라고 했다. A 일병은 외동아들이라고 한다.

슬픔에 잠긴 동료들 - 19일 오후 경북 예천의 내성천 인근에서 집중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던 해병대원들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다. 이날 오전 이들 해병대원 중 한 명은 실종자 수색 작업 도중 급류에 휩쓸렸다. /장련성 기자

A일병은 이날 오후 11시 8분쯤 실종 지점으로부터 약 5km 떨어진 지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최초 신고자인 지역 주민에 따르면, 해병대원들은 당시 구명조끼 없이 장화를 신고 일렬로 내성천을 수색했다.

한 주민은 “일부 대원은 허리 높이까지 물에 들어갔다”며 “내성천은 모래 강이라 그렇게 들어가면 위험할 것 같아 걱정돼 계속 지켜봤는데 갑자기 한 간부가 뛰어와 ‘해병대원이 물에 빠졌다’며 119에 신고해 달라고 했다”고 했다.

군 당국은 A 일병에게 구명조끼가 제공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물에 들어갔을 때 깊지 않았으며, 소방 당국과 협의가 이뤄진 하천 간 도보 수색 활동이었다”며 “유속이 낮은 상태에서 지반이 갑자기 붕괴할 줄 몰랐다”고 했다.

해병대는 예천군 내성천 일대에 18일부터 투입됐다. 소방 당국 요청으로 내성천 변을 수색했고, 일부 실종자를 찾기도 했다. 이에 따라 19일에도 해병대원 39명이 투입돼 하천변을 수색했다. 해병대원은 일반적인 수난 사고 때 119구조대가 활용하는 방식으로 사람과 사람이 일렬로 서서 물속을 걸어 다녔다. 사고 당시 해병대원들은 장화를 신고 일정 거리를 둔 채 다녔다고 한다.

수중 수색이 아닌 하천변 수색이기 때문에 구명조끼는 착용하지 않았다고 해병대 측은 밝혔다. 해병대의 경우 상륙고무보트 등을 동원한 수상 작전 장병에게 구명조끼를 보급하며, 지상 작전 시엔 지급되지 않는다고 한다. 소방 당국이 하천 주변 토사를 탐지봉으로 찔러 찾는 ‘수변 요원’과 물속에 들어가는 ‘수중 요원’ 중에서, 수중 요원에게 부력이 있는 ‘습식 드라이슈트’를 지급하는 것과 비슷하다.

해병대는 소방의 요청에 따라 내성천 주변을 수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병대 관계자는 “소방 당국의 요구로 하천변을 수색한 것”이라며 “해병대는 외부에서 왔기 때문에 예천 주변 지형은 밝지 않았다”고 했다. 한 해병대 장병은 “막상 물에 들어가니 유속이 빨라서 위험한 상황이었는데도 로프 등 최소한의 안전장치 없이 서로에게 의지해 수색 작업에 투입됐다”고 했다. 또 다른 장병은 “들어가 보기 전에는 몰랐는데, 바닥 쪽 유속이 굉장히 빨라서 동료의 손을 놓으면 바로 휩쓸려 간다”며 “유속이 비교적 느린 지점이라고 해 들어갔는데 상당히 빨랐다”고 했다. A 일병이 물에 휩쓸린 지점 인근 주민인 박모(51)씨는 “아무리 하천변이어도 강바닥이 고르지 않아 수심이 목까지 차오르는 곳도 있다”며 “구명조끼도 없이 들어가는 건 말도 안 된다”고 했다. 해병대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날 폭우 실종자 수색을 위해 내성천에 상륙돌격장갑차를 투입했지만, 빠른 유속 때문에 5분 만에 철수했다.

A 일병 부친은 “어제저녁 물 조심하라고 아들과 딱 2분 통화했다”고 했다. A 일병 모친은 해병대 관계자들에게 “아들을 어떻게 못 구했느냐”며 “착하게만 산 아들인데, 이런 일이 있어서 ‘그렇게 해병대에 가고 싶어 해도 가지 마라’고 했는데도 갔다”고 했다.

A 일병 부모의 오열을 두고 자녀를 군에 보낸 부모들은 “남 일 같지 않다”고 했다. 작년 해병대에 아들을 보냈다는 한 부모는 “사고가 나지 않도록 시스템을 정비하는 게 아니라, 우연에만 기대야 하나”라며 “이렇게 병사들을 사지로 내모는데 누가 자식을 군대에 보내려고 하겠나”라고 했다.

수색 전문이 아닌 일반 장병을 사전 훈련 없이 하천 수색에 투입한 것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군(軍)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여름철 수위가 높아진 하천 실종자 수색은 숙련된 전문가들도 어려운 일인데, 아무리 상황이 위급해도 일반 병사를 투입하는 건 비상식적”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또 다른 글에서는 “실종자를 찾으러 간 군인이 숨졌다는 건 겪지 않아도 될 재해를 두 번 만든 셈”이라고 했다.

해병대 출신 김모(27)씨는 “폭우로 불어난 하천에서 작업하는 장병에게 당연히 구명조끼를 지급했어야 했다”며 “해병대 지휘부가 안일했다”고 했다. 다만, 그는 “A 일병은 해병대가 해야 할 일을 했고 다른 해병 장병은 그 점에 동의할 것”이라고 했다.

참사 수습 과정에서 실종자를 찾던 이들이 숨지는 ‘2차 참사’는 종종 일어났다. 지난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땐 한주호 준위가 수색 작전 중 잠수병으로 순직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도 민간 잠수사가 선체 수중 절단 작업 중 폭발 사고로 숨졌다. 군 관계자는 “이번 참사는 안타깝지만, 수해 관련 수색 등의 대민 업무는 해병대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라며 “A 일병 역시 해병대의 의무를 다하다 실종됐기 때문에 충분한 예우를 해줘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