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60대 할머니가 몰던 차량이 사고가 나면서 그 차에 함께 타고 있던 손자 故이도현 군이 숨졌다. 유가족은 차량 결함 입증 책임을 제조사가 갖는 이른바 ‘도현이법’ 청원을 냈고, 5만 명의 동의를 얻었다. 하지만 법 제정 여부는 여전히 안개 속에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산업계 부담을 고려해야 한다”며 ‘신중검토’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22일 열리는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는 ‘도현이법’ 관련 논의를 할 예정이다. 도현이법은 자동차 급발진 의심 사고로 인한 손해가 발생했을 경우 피해자가 가진 입증 책임을 제조업자에게 전환해 자동차 회사 등이 결함이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해 12월 강릉시 홍제동의 한 도로에서 일어난 사고가 법안 제정의 발단이 됐다. 운전자였던 할머니는 크게 다쳤고, 함께 타고 있던 손자 도현군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 사고 차량 블랙박스에는 할머니가 “도현아, 도현아”라고 손자의 이름을 애타게 외치며 “이게(브레이크) 안 돼”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담겼다. 사고 직후 유가족은 차량 전문가를 찾아 급발진이 의심된다는 답변을 받았지만, 이를 증명할 방법이 없어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도현군의 아버지는 지난 2월 제조사가 결함이 없음을 입증하도록 하는 법 개정 청원을 냈고, 6일 만에 국민 동의 요건 5만명을 돌파했다.
이와 관련 정무위 법안 심사자료에 따르면 산업계와 공정거래위원회는 해당 법안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영업비밀 유출이 우려되며 소송남발이 우려된다”는 의견을 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역시 “소비자 입증책임 완화는 불필요한 분쟁과 소송이 남발될 수 있고, 특히 기업의 부담으로 이어져 산업 생태계 붕괴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는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자동차 사고 관련 소송의 남발로 인한 기업경쟁력 약화가 우려된다”고 했다.
공정위 또한 ‘신중검토’ 의견을 냈다. 공정위는 “피해자의 주장만으로 입증 책임을 전환하는 입법 사례는 드물며, 산업계에 미치는 부담 또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공정위는 도현군 아버지의 청원안 외에도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허영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비슷한 내용의 개정안에 대해서도 “산업계 전반의 부담 발생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정무위는 “정보의 편재, 기술적 한계 등의 이유로 피해자의 손해 입증은 매우 어렵다는 현실을 고려할 때 취지는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특히 “자동차 급발진 의심 사고에서 피해자가 승소한 사건은 1건도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사고 발생, 피해자 주장만으로 제조업자에게 전적으로 입증 책임을 부담하게 하는 것의 합리성에 대한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도현군 유족 측은 “도현이법이 올해 안에 통과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족을 대리하는 하종선 변호사는 “AI시대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도 분석이 어려운 소프트웨어 알고리즘 결함을 소비자가 입증해야 한다는 건 매우 부당하다”며 “자동차를 타는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일이기에 이번 국회에서 꼭 개정안이 통과되기를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