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일러스트/뉴시스

서울 송파구에 사는 윤모(23)씨는 지난 3월 ‘서울중앙지검 검사’라는 남성으로부터 자신의 계좌가 중고거래 사기에 쓰였다는 전화를 받았다. 이 남성은 카카오톡으로 ‘수사협조의뢰서’를 보내며 “피해수법을 재연해야 하니 상품권을 결제하라”고 지시했다. 윤씨는 티몬, 위메프 같은 소셜커머스에서 상품권 570만원을 8차례에 걸쳐 결제했고, 온라인에서 상품권을 쓸 때 사용해야 하는 식별번호(핀번호)를 상대에게 알려줬다. 서울에 사는 취업준비생 문모(25)씨도 지난 3월 9일 수사기관을 사칭한 사람에게 “계좌 내 돈을 금융감독원 안전계좌로 옮겨야하니 상품권 820만원 어치를 결제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에 따라 핀번호를 보냈다. 두 사람은 모두 전화를 끊고 나서야 자기가 보이스피싱을 당했다는 걸 깨달았다.

보이스피싱 피해가 끊이질 않아 정부가 계좌 개설을 제한하거나 대포통장 단속 등을 강화하자 최근엔 상품권을 매개로 한 범죄가 빠르게 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보이스피싱 범죄 자체는 2019년 3만7667건에서 작년 2만1832건으로 줄었지만, 이 기간 상품권을 요구하는 수법은 727건에서 4641건으로 6배 이상이 됐다. 포털사이트에서도 쉽게 각종 상품권을 판매하는데, 상품권을 구입한 후 보통 10자리 안팎의 숫자나 영문 조합으로 이뤄진 핀번호를 넘기라고 요구하는 식이다. 현금보다는 불편하지만 은행 계좌를 거치지 않아 추적이 더 힘든데다, 쓰기도 간편해 범죄자들이 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특히 상품권 피싱은 온라인 상품권 구매에 익숙하면서도 사회 경험이 적은 청년들을 상대로 자주 일어난다. 강원대와 경북대, 안양대 등도 이런 점 때문에 최근 ‘사회초년생 대상 상품권 피싱을 주의하라’는 경찰 안내문을 학내에 공지했다.

아예 청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을 겨냥한 경우도 있다. 편의점에서 상품권을 판매하는 알바생에게 전화를 걸어 본사 직원이라고 속인 후 핀번호를 빼내는 식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범죄 타깃이 되는 상품권 판매 채널의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구매 시 검증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