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견을 가족으로 맞아 사랑으로 키워가던 부부에게 날벼락 같은 사고가 일어났다. 지난 1월 남편 A씨와 반려견 ‘쩔미’는 차를 타고 산책을 나갔다가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심하게 다쳤다. 이 사고로 A씨는 전치 48주의 중상을 입었고, 반려견은 하반신 마비 상태가 됐다. 임신한 아내 B씨가 남편과 쩔미의 치료, 앞으로의 생활비를 책임져야 하는 막막한 상황에서 가해자 측은 “강아지의 치료비는 줄 수 없다. 법이 그렇다”는 입장을 전해왔다고 한다. B씨는 “법이 그렇다쳐도 음주운전은 가해자가 했는데 왜 그 피해는 우리가 다 떠안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경기 시흥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월 26일 오후 10시 15분쯤 시흥시 정왕동 옥구공원 앞 삼거리에서 50대가 모는 G80 음주운전 차량이 중앙선을 넘어 마주오던 스포티지 차량을 들이받았다. 이어 스포티지 차량 주변 1~2차로에 있던 G70 승용차 등 4대가 추가로 부딪치면서 6중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6명이 부상을 당했는데, 가장 피해가 심한 게 G70 운전자였다. 그게 바로 A씨였다. 사고 당시 음주운전자는 면허 취소 수준에 해당하는 만취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아내 B씨는 21일 쩔미의 사진을 올리던 인스타그램 계정에 두 달간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는 “남편과 쩔미는 집 근처 넓은 공원으로 차를 타고 산책을 나갔다가 그 길에 큰 사고를 당했다”며 “이 사고로 남편은 왼쪽 갈비뼈 12대가 다 부러졌고, 장기에 동시다발적인 큰 충격을 받아 완전 절제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B씨는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며 “차량 뒷자리에 타고 있던 사랑하는 쩔미는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척추가 부러져 긴급 수술을 받았고, 큰 수술을 견뎌줬지만 여전히 뒷다리는 회복되지 않았다”고 했다. B씨가 공개한 영상을 보면 쩔미는 앞다리만으로 움직이며 뒷다리는 질질 끌고 다닌다.
B씨는 “임신 안정기가 되자마자 쩔미를 퇴원시켜 열심히 간호 중”이라며 “남편은 계속 입원 중이다. 처음 크게 다쳤던 부위 말고도 다른 문제가 계속 발생해 적어도 1년간은 일도 못하고 계속 치료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곧 아이도 태어날 텐데, 생활비도 그렇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쩔미의 수술비와 치료비, 재활비는 저희에게 점점 큰 부담이 되고 있다”고 했다. 쩔미의 치료비만 현재 2900만원 정도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가해자의 보험사는 쩔미에 관한 치료비는 지불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고 한다. 민법상 반려동물의 법적 지위는 ‘물건’으로, 보험금 산정에서도 대인이 아닌 ‘대물’ 배상이 이뤄진다. 대물배상 손해액 산정방법은 ‘수리비용’과 ‘교환가액’으로 나뉜다. 반려견을 교환한다는 건 A씨 부부에게는 적용할 수 없는 이야기이기에, 치료비는 ‘수리비용’으로 들어간다. 수리비는 얼마가 나오든 피해물 사고 직전 가액의 120%까지만 받을 수 있다. 반려견의 경우 사고 직전 가액의 기준은 ‘분양가’다.
문제는 쩔미가 ‘유기견’이라는 점이다. 분양비가 없는 유기견은 받을 수 있는 금액조차 없는 셈이다. B씨는 “가해자 보험사는 쩔미에 관한 치료비는 못주겠다며 소송을 하자고 한다”며 “법이 어떻든 간에,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으면 남의 인생 이렇게 망쳐놓고 나몰라라하면 안 되는거 아닌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쩔미는 유기견이었다. 누군가에게 버려졌고, 결국 우리 품으로 왔다”며 “처음 데려간 병원에서 안락사를 제안 받았고, 무슨 일이 있었던 저희는 쩔미를 포기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어 “살아있어준 게 고맙고 앞으로도 재활에 아낌없는 지원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B씨는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태그를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