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지창욱 /조선일보 DB

KBS가 드라마 출연료의 일부인 ‘재방송료’를 놓고 배우 측과 갈등을 빚고 있다. KBS가 외부 제작사로부터 드라마의 방송권만 구매한 뒤, ‘관례’에 따라 1회가 아닌 여러 번 방송하면서 배우들에게 ‘재방송에 따른 대가는 제작사에서 받아야 한다’며 재방송료 지급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배우 측은 “재방송을 몇 번이나 할지 KBS가 마음대로 정하면서, 얼마까지 불어날지 모르는 재방송료를 제작사에 떠미는 게 말이 되느냐”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방송료를 못받고 있는 출연진은 지창욱과 소녀시대 출신 서현·수영 등 톱스타뿐만 아니라 생활고에 시달리는 무명배우들까지 포함돼 논란이 되고 있다.

15일 조선닷컴 취재에 따르면 KBS는 자신들이 지난해 방송한 일부 드라마의 재방송료를 배우들에게 지급하지 않고 있다. 재방송료가 지급되지 않은 드라마는 지난해 상반기 서현의 출연작 ‘징크스의 연인’, 김재욱과 걸그룹 f(x) 출신 크리스탈의 출연작 ‘크레이지 러브’, 하반기 방송된 강하늘·하지원 주연의 ‘커튼콜’, 지창욱과 수영 출연작 ‘당신이 소원을 말하면’ 등 총 네 작품이다.

이들 드라마는 모두 독립된 외부 제작사가 자체적으로 제작한 뒤, KBS와는 방송권 계약만 맺은 작품들이다. 과거에는 방송사가 드라마를 직접 제작해왔지만, 최근에는 외부 제작사가 자비를 들여 제작한 뒤 방송사에 방송권을 판매하는 이 같은 방식이 늘어나고 있다.

KBS가 지급을 거부하는 근거는 저작권법 제100조다. 이 조항은 ‘영상저작물의 이용을 위하여 필요한 권리는 영상제작자가 (영상저작물 제작 협력사로부터) 이를 양도 받은 것으로 추정한다’는 조항이다.

KBS 측은 “저작권이 영상제작자에게 있으므로, 출연자 등에 대한 재방송료 지급 의무도 영상제작자에 있는 것”이라며 “법률검토도 마쳤다”고 했다.

방송계에서는 이같은 KBS 측 법 해석에 대해 “당초 입법 취지와 정반대로 법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해당 법은 방송사가 영상을 직접 만들던 시절 만들어진 것으로, 그 법에서 말하는 ‘영상제작자’란 ‘방송사’를 가리킨다는 설명이었다. 방송인들의 단체인 방실협 측은 “‘방송사의 방송권 구매’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 방송사 횡포로부터 영세한 제작사를 보호하려는 취지로 만들어놓은 법을 오히려 횡포를 부리는 데 활용하다니 황당하다”고 말했다.

한 주연급 배우도 “방송사는 광고주로부터 본방송은 물론이고, 재방송 직전과 끝나고 나오는 광고비를 받는다. 표준 계약서에서 재방송료를 방송사가 내라고 하는 건 그 광고 등 추가 수입을 공정하게 나누라는 취지인데 KBS가 이상한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라며 “이제껏 방송권 구매 방식 드라마도 재방송료를 줘왔고 MBC와 SBS도 계속 주는데, 국민들에게서 강제 수신료까지 받아가는 KBS만 유독 올해부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실제 KBS는 2020년 박해진과 조보아 주연의 ‘포레스트’와 2021년 나인우, 지수 주연의 ‘달이 뜨는 강’, 박지훈, 강민아 주연의 ‘멀리서 보면 푸른 봄’ 등의 방송권 구매 드라마에도 재방송료를 지급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KBS 측은 “실수였다”며 “환수 조치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에 반해 MBC와 SBS는 방송권 구매 드라마에 대한 재방송료를 지급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지급 규정 변경 예정도, 환수 예정도 없다고 밝혔다.

KBS의 주장에 따르면 재방송료를 내야 하는 건 제작사다. 하지만 제작사 측은 이들 싸움에 끼고 싶지 않아하는 반응을 보였다. 조선닷컴은 재방송료가 지급되지 않고 있는 드라마를 제작한 제작사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여러 번 물었지만 아무런 답을 받을 수 없었다.

제작사가 팔짱만 끼고 KBS와 방실협가 줄다리기를 하는 사이, 정작 피해를 본 건 무명 배우들이었다. 배우에게 가는 최대 재방송료는 드라마 회당 출연료 상한액인 230만원의 20%인 46만원이기에 수억원의 출연료를 받는 주연 배우 미미한 금액이지만 무명 배우들에겐 기초생활비이기 때문이다.

한 조연 배우는 “재방송료는 나 같이 여러 작품에 조금씩 출연하는 무명 배우들에겐 생명 같은 돈이다. 이 사태로 생활고에 직면한 동료 배우들이 많다”며 “국민의 방송인 만큼 우선 기존 방식대로 지급하고, 합의 뒤 환수를 하더라도 향후 받을 돈에서 조금씩 덜 주는 방식으로 처리해 줘야 당장 급한 사람들에게 숨 쉴 틈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연 배우들은 이 사태에 별 관심 없다. 출연료에 비해 재방송료가 매우 적기 때문”이라며 “무명 배우들이 직격탄을 맞았는데, 캐스팅이 안 될까 봐 어디다 말도 못하고 속앓이만 하며 돈을 꾸러 다닌다. 누군가 도움을 좀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