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경기북부경찰청에는 한 영어유치원에서 원어민 강사가 유치원생의 뺨을 때렸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은 현재 이 유치원 CCTV 등을 확보해 사실관계를 수사 중이다. 학원 측은 이런 일이 일어난 후에도 최근까지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격 있는 원어민 교사만 수업을 진행한다”고 홍보한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검증할 방법이 없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2 서울국제유아교육전 & 키즈페어'를 찾은 관람객들이 영어원서를 살펴보고 있다. 2022.11.17/뉴스1

최근 전국 곳곳에서 무경력·무경험 강사들이 영어유치원(영유)에 잇따라 채용되고 있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어 소비자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만 3~6세 안팎 아이를 둔 중산층 가정에서는 자녀의 미래를 위해 영어유치원에 보낼지 말지가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다. 과거에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등 일부 교육열이 높고 재력 있는 가정의 자녀들 사이에서만 유행했지만 지금은 영유 열풍이 중산층으로 폭넓게 확산하고 있다. 하지만 수요는 늘었는데 코로나 사태를 거치며 강사 공급이 줄어든 게 문제다.

10일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영어유치원은 811곳으로 2018년(562곳)에 비해 최근 5년간 44% 증가했다. 영유 열풍이 시작된 서울은 지난해 269곳으로 이 기간 증가율이 25%에 그쳤지만, 경기는 5년간 72곳이 더 늘었고 대구는 18곳에서 44곳이 돼 2배 이상으로 늘었다. 반면 원어민 강사는 코로나 사태 동안 크게 줄었다. 국내에서 외국어 회화를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비자(E-2)로 입국한 강사 수는 지난해 1만1868명으로 2019년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그러다 보니 ‘가짜 전문 강사’를 채용해 앞세우는 경우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한 영어유치원에서 근무했던 이모씨도 졸지에 허위 경력자가 됐다. 영어유치원 원장이 학부모들에게 이씨를 소개할 때 ‘다른 어학원 근무 경력’ ‘유아교육과 전공’이라고 했는데 모두 거짓이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강사 A씨가 일했던 유치원에서는 이탈리아나 쿠바 사람을 강사로 고용하고선 원어민이라고 소개한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원어민 기준이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을 가리키는데 이들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서 발음도 다른데, 원어민이라고 안내하면서 속였다는 것이다. A씨는 “학부모가 이런 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해도 ‘못 믿겠으면 나가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아예 경력을 묻지 않는 곳도 있다. 실제 본지가 한 원어민 강사 채용 커뮤니티에서 확인했더니, 지난달 8일 게시된 서울 송파구의 한 영어유치원 강사를 모집하는 글에 ‘급여: 월 230만원(기본급, 경력 없음, 관련 전공 없음, 자격증 없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최근 2개월 동안 올라온 구인 글 24개 중, 1건을 제외한 23건 모두 이런 식으로 특별한 경력을 요구하지 않고 있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테솔(TESOL)’ 같은 국제 자격증을 채용 조건으로 내건 업체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현장에선 학사 학위가 없는 대학생을 아르바이트처럼 채용하는 영어유치원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요즘 영유 비용은 아이 1명당 월 100만원 안팎에 이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지역별 주요 영유 중에는 대기자만 수십~수백명에 달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비용을 치르고 있지만 정작 학부모들은 이런 ‘가짜 전문 강사’를 걸러낼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다. 영어유치원은 ‘유치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원래 일반 어학원과 같은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 적용 대상이다. 법적으로는 유아 대상 영어 학원이라는 뜻이다. 일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은 유치원 정교사·보육교사 같은 자격증이나 관련 전공이 요구되지만 영유는 그런 의무가 없다.

일부 학원은 자발적으로 전공과 경력 등을 안내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맞는 내용인지 검증하기란 불가능하다. 손혜숙 경인여대 유아교육학과 교수는 “인생에 가장 중요한 유아 교육 시기에 자격 미달 강사에 위험하게 노출돼 있는 건 큰 문제”라며 “기본적인 정서, 신체, 사회성을 발달시키려면 영어유치원에도 질적으로 보장된 인력을 갖추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