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6일 강원 강릉시 홍제동의 한 도로에서 60대 여성운전자가 몰던 SUV 승용차가 빠른 속도로 질주하다 도로 인근 지하통로에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MBC '실화탐사대'

지난해 12월 6일 강원도 강릉시 홍제동의 한 도로에서 여성 운전자 A(69)씨가 몰던 SUV 승용차가 빠른 속도로 질주하다 도로 인근 지하통로에 추락하는 사고가 났다. 이 사고로 A씨가 크게 다쳤고, 차에 함께 타고 있던 A씨의 손자 도현(당시 12)군은 심정지 상태에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

도현군의 유족은 급발진 사고를 의심하고 있다. 사고 당시 차량 블랙박스 영상에는 갑자기 차량에서 굉음이 나더니 A씨가 “이게 왜 안돼? 큰일났다”고 말하는 소리가 담겼다. A씨는 애타게 “도현아, 도현아, 도현아”라며 손자의 이름을 불렀지만 차량은 멈추지 않았고, 지하통로에 추락하고 말았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세상을 떠난 아들을 애도할 틈도 없이, A씨가 교통사고특례법에 따라 형사입건 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6일 강원 강릉시 홍제동의 한 도로에서 60대 여성운전자가 몰던 SUV 승용차가 빠른 속도로 질주하다 도로 인근 지하통로에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JTBC '한블리'

A씨의 아들이자 도현군의 아버지인 이모씨는 23일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 이 같은 사연을 전하며 급발진 의심 사고 시 결함 원인의 입증 책임을 제조사로 전환하도록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이씨는 “도현이를 떠나보냈다는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 속에 원인 규명을 해야겠다 생각하고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며 하지 말라는 주변 만류에도 분류하고 제조사인 쌍용자동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고 했다. 그는 “소송을 준비하면서 느낀 건 도현이를 온전히 애도하지 못한 채 급발진이 왜 발생했는지에 대한 사고 원인 규명을 비전문가인 사고자나 유가족이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억울하고 답답한 대한민국 현실에 울분이 터지고 억장이 무너졌다”고 했다.

이씨는 “사고당한 것도 억울한데 사고 원인 규명을 도대체 왜 사고 당사자인 우리가 해야만 하느냐”며 “도현이와 같은 또 다른 소중한 생명이 급발진 사고로 희생되어서는 안되지 않나. 언제까지 제조사의 이권과 횡포 앞에 국민의 소중한 생명의 가치가 도외시되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며 “도현이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서, 모든 급발진 사고로 동일한 아픔을 겪는 국민 여러분을 대표해 국회에 호소한다”고 했다. 이씨는 ▲급발진 의심 사고 발생 시 결함 입증 책임을 제조사로 전환해줄 것과 ▲급발진 사고가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제조사의 기술적 대책 마련을 요구한다며 “국민동의 청원에 동참해 달라”고 했다. 해당 청원은 27일 오전 10시 현재 2만9000명이 동의했다.

이씨는 24일 서울특별시의회 교통위원회 주최로 열린 ‘자동차 급발진 사고 원인 및 해결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도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이씨는 “더 이상 아들의 사고와 같은 황망한 일이 없길 바란다”며 관련법 개정을 촉구했다.

이날 토론회 주제 발표를 맡은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급발진 사고에 있어서 대한민국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얘기한다”며 “한국은 운전자가 결함을 밝혀야 하지만 미국은 재판 과정에서 자동차 제작사가 자사 차량의 결함이 없다는 것을 밝혀야 하는 구조”라고 했다. 김 교수는 “예전에는 운전자가 자동차 결함을 밝히라고 했지만, 최근에는 자동차제작사나 판매사들도 일부 책임을 져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며 “하지만 여전히 관련 법규나 지자체 조례 등은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