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서울 양천구 신정동 한 아파트 단지에서 철제 울타리에 몸통이 끼인 고라니가 발견됐다. 고라니는 우리나라에선 흔히 볼 수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세계자연보전연맹이 지정한 멸종 위기 동물이다. 울타리를 빠져나오지 못해 고통스러워하던 고라니는 서울시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에 구조돼 진료를 받은 뒤 다시 인근 산으로 돌아갔다.
인구 1000만명의 대도시 서울에서도 야생동물이 도심 한복판이나 아파트 단지 등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주로 산에서 길을 잃고 도심으로 내려왔거나 차나 건물에 부딪혀 다친 동물들이다. 이렇게 길을 잃거나 다친 야생동물을 구조해 보호하고 치료해 주는 곳이 서울에 딱 한 곳 있다. 서울 관악구 서울대 수의대 건물에 있는 서울시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다.
서울시는 서울대와 업무협약을 맺고 2017년부터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약 1490㎡ 넓이의 동물병원을 리모델링해 만든 이곳에서 매년 2000마리의 다친 야생동물이 수술과 입원 치료를 받는다. 수의사 3명과 재활관리사, 동물보건사 등 직원 5명이 매일 동물들을 돌본다.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새와 포유류 등 1687마리가 구조됐다.
센터에는 서울 곳곳에 숨어 살다가 다양한 이유로 다친 동물들이 입원한다. 이달 초 큰소쩍새는 하늘을 날다 소방서 건물유리창에 부딪혀 구조됐다. 성인 남성 주먹 크기인 큰소쩍새는 올빼미 종류인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어 서울 밖에서도 보기 어렵다. 담요에 싸인 채 플라스틱 상자 안에 있는 박쥐는 아파트 창문에 매달려 있다가 구조됐다.
도시에 살면서 불의의 사고를 당한 동물들도 많다. 눈을 다친 채 입원한 멧도요는 담요로 빛을 가려둔 어두운 새장 속에서 시력을 회복하는 훈련을 받았다. 한쪽 다리가 부러진 청둥오리는 다리에 붕대를 감고 새장 안에서 한 발로 서는 연습을 한 후 방생됐다. 한장희 수의사는 “센터에서 할 수 있는 치료를 최대한 해주고 자연으로의 복귀가 어려운 불가피한 경우에는 안락사시킨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가장 많이 구조되는 동물은 조류다. 올해 1~11월 구조된 1687마리 중 1540마리(91.3%)가 새였다. 이 센터에서는 유해 조류로 분류되는 비둘기도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다리가 부러진 새는 상태에 따라 스테인리스 핀을 뼈 속에 삽입하는 수술을 받기도 한다. 둥지에서 떨어져 어미를 잃어버린 새끼 새도 데려다 자립이 가능할 때까지 보살펴준다. 새끼 새들은 온도에 예민하고 따뜻한 곳에서 키워야 해 신생아 인큐베이터처럼 생긴 새장에서 생활한다. 철새는 치료 도중 계절이 바뀌면 돌아갈 무리가 한국을 떠나고 만다. 이럴 경우 센터에서 1년 동안 보호하다 무리가 돌아오면 돌려보낸다.
최근에는 너구리 구조도 많다. 너구리는 북한산, 도봉산, 우면산, 대모산과 양재천 등 서울 시내 산과 하천 지역에 자주 출몰하는데 ‘개선충’에 감염돼 피부병을 앓다가 구조되는 경우가 많다. 개선충은 진드기의 일종인데 감염되면 털이 빠지고 피부가 딱딱하게 갈라지다가 그 틈으로 다른 바이러스에 감염돼 패혈증과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장지영 수의사는 “개선충은 사람에게도 옮을 수 있으니 아픈 너구리를 발견하면 직접 만지지 말고 꼭 구조 요청을 해달라”고 말했다.
다친 동물이 무사히 치료받고 야생으로 돌아가는 ‘방생률’(자연회귀율)은 30~40% 정도다. 야생동물이다 보니 채혈, 엑스레이 등 검사 과정에서 심한 스트레스로 죽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 수의사는 “참새처럼 크기가 작은 개체는 채혈 과정에서 너무 많은 피를 뽑게 돼 죽기도 한다”며 “살리려고 검사하는 건데 그 과정에서 동물이 죽어버리면 맥이 빠진다”고 했다.
야생동물구조센터는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전화로 신고 접수를 받는다. 다만 야생동물이 정말 구조가 필요한 상황인지 잘 살펴봐야 한다. 한 수의사는 “까치는 어미가 새끼를 일부러 둥지에서 떨어트려 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는데 땅에 떨어진 새끼만 보고 시민들이 신고하는 경우가 있다”며 “출혈 등 상처가 있는지 살펴보고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종이 상자에 넣어 보관해 달라”고 했다. 야생동물을 집에서 치료하고 키우는 것은 동물을 더 아프게 할 수 있고 야생생물보호법에도 위반된다. 다친 야생동물을 발견하면 집에서 치료하지 말고 구조 요청을 하거나 센터에 내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