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후 방과후 수업을 마치고 하교하던 초등학생이 음주 차량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사고 지점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조화가 놓여 있다./강우량 기자

어린이보호구역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음주 운전 차량에 치여 숨진 초등학생 A(9)군의 부모가 경찰서를 방문해 가해자에 대해 뺑소니 혐의를 적용할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A군의 부모는 인근 주민과 학부모, 시민들로부터 뺑소니 혐의 적용을 촉구하는 탄원서도 받았는데, 금세 1만장 가까이 모였다고 한다.

A군의 부모는 7일 오후 4시쯤 초등학교 주변과 인근 주민들로부터 받은 탄원서 4500여장을 들고 서울 강남경찰서를 방문했다. 메일로 받은 탄원서 5000여장은 뽑을 겨를이 없었고, 지금도 계속 메일로 탄원서가 오고 있다고 한다. A군은 지난 2일 강남구 청담동의 한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방과후 수업을 마치고 하교하던 중 음주 상태인 30대 남성이 운전한 차량에 치여 사망했다. 경찰은 이 남성을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특가법상 어린이보호구역 치사 및 위험 운전 치사,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등 3가지 혐의를 적용해 지난 4일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그러나 A군의 유족 측은 “가해자가 사고를 내고 구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현장을 떠났다”며 뺑소니(특가법상 도주치사) 혐의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날 사건을 담당하는 강남서 교통과장 등과 1시간가량 면담을 가진 후 본지 기자와 만난 A군의 어머니는 “유족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뺑소니 혐의 추가를 면밀히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얻었다”고 했다. 그는 “아들이 세상을 떠난 상황에서, 가해자가 무기징역을 받는다고 내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겠느냐”며 “다만 아이들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음주 운전 행각과 뺑소니 행각이 근절되길 바라는 마음에 나서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2일 발생한 스쿨존 내 음주 차량에 의한 초등생 사망 사고 현장에 마련된 추모 공간/강우량 기자

A군의 어머니는 여전히 슬프다는 감정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할 만큼, 현실 감각이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사고 당시 방과후 수업 선생님이 전화를 걸어오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아들에게 전화를 해보라고 하더라”며 “아들이 전화를 받지 않더니, 몇 분 뒤 경찰로부터 병원으로 급히 오라는 연락이 왔다”고 했다. 이후 3일간의 장례를 마치고 이틀이 지난 6일에서야 아들의 사고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날 면담에서 경찰은 A군의 부모에게 “가해자가 사고 상황을 인식했는지 불분명해 뺑소니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가해자가 A군을 들이받은 뒤 인근 자택으로 들어갔다가 수십초 뒤 현장으로 돌아왔고, 경찰과 소방이 출동해있는 상황에서도 피하지 않아 ‘도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A군의 어머니는 “중요한 것은 가해자가 사고 현장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서도 어떠한 구호 조치도 벌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라며 “가해자는 신고 전화를 하거나 아이에게 다가가는 행동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실제 사고 신고는 인근 가게 사장과 학교를 나서던 교사가 1차례씩 한 것으로 파악됐다.

A군의 어머니는 경찰의 소극적 수사 태도에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신고자들에 대한 조사가 어제에서야, 그것도 전화로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신고자를 비롯한 목격자들을 면밀히 조사하고 진술을 청취했다면 사고 당시 상황과 가해자의 뺑소니 정황을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A군의 유족 측은 뺑소니 혐의 추가 적용 여부를 지켜보며, 관련 판례와 유사 사례 등을 찾아 제출할 계획이다. A군의 어머니는 “탄원서 1만장을 모아주신 시민들에게 너무도 감사한 마음”이라며 “우리 아이가 살아 돌아올 수 없으니, 지금 시점에서는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다”라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유족 측과 면담한 대로 뺑소니 혐의 추가 적용 여부를 면밀히 검토할 것이며, 목격자 조사 등에 대해서도 적극 나설 것”이라고 했다. 경찰은 구속 만료 기한인 9일 전에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 뒤, 이후 조사되는 부분은 추가 송치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