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4일 새벽 3시쯤 검은색 모자를 깊게 눌러 쓴 한 남성이 인천 남동구의 지하철 차량기지에 침입했다. 이 남성은 철로에 서 있던 열차 외벽에 ‘WORD’라는 알파벳 글자를 그림으로 그리고 사진을 찍은 뒤 달아났다. 가로 2m 세로 1m 크기의 그라피티(graffiti·스프레이 페인트로 벽 등에 그리는 그림이나 낙서)를 그리는 데 걸린 시간은 10분 남짓이었다.

/서울교통공사

이 사람을 포함한 외국인 남성 2명은 인천 외에도 22~23일 서울과 11일 대전의 차량기지 등 전국 6곳에서도 열차 등에 ‘RACE’ ‘PLAY’ ‘RIDE’라는 글자를 열차에 그라피티로 그린 뒤 사라졌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9월 8일 입국해 24일 출국했는데, 약 2주간 전국을 돌며 범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은 인터폴에 요청해 적색수배를 내렸고, 2개월 추적 끝에 이들 2명 중 1명은 지난달 25일 루마니아에서 붙잡힌 것으로 4일 전해졌다. 미국인 L(26)씨는 당시 루마니아 한 공항에서 불가리아로 떠나려다 현지 경찰에 붙잡혔다. 적색 수배가 되면 전 세계 공항과 항만에 인적 사항과 범죄 혐의가 등록되기 때문에 항공기나 선박으로 이동하면 소재가 파악될 수 있다. L씨와 함께 범행을 저지른 이탈리아인 P(26)씨는 한국을 떠나 베트남으로 입국했지만 이후 행방은 묘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월 24일 새벽 한 외국인 남성이 인천 남동구 철로에 서 있던 열차 외벽에 ‘WORD’라는 글자로 ‘그라피티’를 그려놓은 모습. /인천교통공사

두 사람은 현재 공동 건조물 침입과 재물손괴 혐의를 받고 있다. 지하철은 다수 시민들이 이용해 국가 보안 시설로 지정돼 있는데, 이들은 밤에 철로 주변 철조망을 잘라 구멍을 만든 뒤 차량 기지 내부로 침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각 지역 교통공사는 낙서를 지우고 잘린 철조망을 복원하는데 열차기지 한 곳당 약 200만원씩을 썼다고 한다.

경찰은 이들이 ‘Rail Goons’라는 이름의, 국제적으로 유명한 그라피티 단체 소속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 5월 인도에서도 지하철에 그라피티가 그려진 사건이 있었는데, 이번에 국내 지하철 열차에 그려진 그림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접근이 어려운 곳을 골라 그라피티를 그리고 그걸 과시하는 게 이 단체들의 목적인 것 같다”면서 “이번에 체포된 2명은 범죄인 인도 절차를 밟고 있으며 루마니아에서 이를 승인하는 대로, 국내로 송환해 처벌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