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산점 점수가 잘못됐어요. 합격이 아닌, 불합격입니다. 죄송합니다”
취업준비생인 강모(28)씨는 가고 싶었던 공기업의 서류전형 합격 발표 다음날, 청천벽력같은 전화를 받았다. 공기업 측의 가산점 채점 실수로, 합격 통보를 받은 지 하루 만에 서류합격이 취소됐다는 내용이었다. 강씨와 공기업 측의 통화 시간은 48초. 당황한 강씨는 “왜 그런 거냐”라고 따지지도 못한 채, 전화를 끊었다.
현재 5·6·7급 신입사원 공채를 진행 중인 한국농어촌공사는 지난달 25일 지원자들의 이메일을 통해 서류전형 합격자를 발표했다.
강씨는 5급 신입사원 서류전형을 통과한 합격자 중 한 명이다. 농어촌공사 홈페이지를 보면 5급 채용 인원은 총 190명, 서류전형 합격자는 20배수로 약 3800명이다. 그러나 이 결과는 하루 만에 번복됐다.
강씨는 조선닷컴에 “전화로 합격 번복을 통보받았다. 5급 신입사원 공채에 지원했는데 (회사 측이) 자격증 관련 가산점이 잘못 계산됐다, 죄송하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그는 서류전형을 통과한 것으로 알고 다음 전형인 필기시험을 준비하려 했다.
강씨는 “전화를 받고 상황 파악도 제대로 안됐고 (당시) 밖에 나와 있었던 터라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할 수도 없어서 그냥 알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실제 농어촌공사 측이 강씨에게 번복을 통보하기 위해 했던 통화 시간은 48초로, 1분도 채 되지 않는다. 강씨는 “(번복 이유를) 자세히 설명 듣지 못해서 이해가 안 됐다. 이의제기를 할 수 있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며 “(연락을 받고) 너무 당황스럽고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회사가 이번 일과 관련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 농어촌공사 “대행업체 실수...구제 방안은 없어”
농어촌공사 측은 대행업체를 통해 서류전형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면서도 이번 번복 관련 구제 방안은 따로 없다고 밝혔다. 피해자는 강씨 말고도 한 명 더 있었다. 농어촌공사 관계자는 “번복된 지원자가 2명이다. 그분들에게는 충분히 설명을 다 드렸다”고 말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농어촌공사는 채용 공정성을 위해 고용노동부에서 인증받은 인사 업체를 통해 일부 채용 과정이 진행된다. 이 대행업체에서 서류전형 중 자격증 관련 가산점을 잘못된 기준으로 채점해 합격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지원자들이 합격해 이번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 대행업체는 5급 지원자인 강씨의 자격증 가산점을 6급 기준으로 적용했고, 이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농어촌공사 관계자는 “6급에서는 복수 자격증이 인정되고, 5급은 자격증 중 하나만 인정된다. 5급에 6급 기준이 적용돼서 오류가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농어촌공사는 서류합격이 번복된 지원자에 대한 특별한 구제책은 없다는 입장이다. 강씨 등을 구제하게 되면, 서류전형 합격자 배수가 늘어나서 오히려 합격한 다른 지원자들에 대한 역차별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만약에 필기시험이나 면접 과정에서 누군가 부정행위를 해서 평가에 문제가 생겼다면 재시험, 재면접을 보게 한다는 매뉴얼이 있다”면서 “그러나 이번에는 채점 오류로 애초에 계량적인 점수가 낮은 지원자들이 합격한 상황이어서 잘 설명을 드리고 (불합격 사실을) 안내해드리는 것이 전부”라고 했다.
◇ 변호사·노무사도 “법적으로 구제받긴 어려워”...그러나
전문가들도 최종적으로 채용 예정이 취소된 경우가 아니라 단순히 채점을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구제해야 할 의무는 없다고 봤다.
법무법인 대한중앙의 신예원 변호사는 “근로기준법과 판례에 따르면 근로계약을 쓰기 전이라도 직원에게 최종 합격을 통보한 시점부터 근로계약 관계가 성립한다”며 “이에 따라 최종 합격 번복이라면 부당해고나 불법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을 여지는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류전형 합격은 최종 합격 통보가 아니므로 이를 취소해도 부당해고로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대한 실수로 회사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행위를 한 직원은 취업규칙 등에 따라 사내 징계가 가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종원 노무사도 “채용 예정이 취소된 것이면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할 수 있지만 채용 과정 중 잘못된 고지로 인해 서류합격이 취소된 것이므로 법적으로 구제받기는 힘들다”고 했다. 이어 “법적 공백이 있는 것”이라며 “(채용기관의 과실 등으로 전형 합격 번복이 발생했을 경우)과태료 등 불이익을 줄 수 있는 법적 조항이라도 있으면 좋은데 없다”고 했다.
다만 서류 합격 취소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는 가능하다. 신 변호사는 “서류전형 합격 취소가 부당해고로 보기는 어렵지만, 회사 측은 합격기준과 점수 등을 면밀히 검토한 뒤 합격 통보를 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며 “서류 합격 통보 후 지원자가 필기시험을 위한 문제집을 사거나 인터넷 강의를 신청하는 등 금전적 피해가 발생했다면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 지급 의무도 인정될 여지가 있다”면서도 “이는 소액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농어촌공사 “이런일 생겨 부끄러워…방지 방안 검토 중”
농어촌공사의 다른 관계자는 “현재 서류전형을 대행업체에서 맡아서 하고 점검도 (대행업체가) 자체적으로 하고 있다”며 “그래서 아예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서류전형 검증을 할 수 있는 기관을 중복적으로 두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런 일이 생기면 안 되는데 생겨서 부끄럽다. 지원자분들이 심적으로 많이 힘드실 텐데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강씨는 이번 일에 대해 “인사담당자 잘못으로 이런 일이 생긴 건데 (취업준비생 입장에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농어촌공사는 전화 한통으로 번복하면 되지만, 취준생들은 며칠 동안 자괴감, 허탈함, 정신적 충격에 빠져 다른 채용 준비도 못한다”며 “합리적으로 (이 일이) 해결됐으면 좋겠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씨와 반대로 서류전형 결과 번복으로 불합격에서 합격이 됐다는 한 지원자는 블로그를 통해 “서류탈락이었는데 (회사로부터) 전화가 와서 사과의 말씀과 함께 정정해 주더라”라며 “이미 다른 곳 면접을 준비 중이었던 터라 크게 화가 난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나와 반대로 합격에서 불합격으로 번복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시험 하나하나가 중요한 수험생 입장에선 이런 일 하나하나에 멘탈이 무너지곤한다. 농어촌공사는 자중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