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영양사가 신규 발령 조리사에게 근무 시간 외에 채썰기 연습을 하도록 하고, 이를 인증하는 사진을 보내라고 지시한 것은 직장 내 괴롭힘 행위에 해당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이 나왔다.

인권위는 지난달 17일 이 같은 일이 벌어진 A 중학교 교장에게 소속 직원들을 대상으로 직장 내 괴롭힘 예방을 위한 인권 교육을 실시하라고 권고했다고 28일 밝혔다.

/일러스트=정다운 기자

이 사안 관련 인권위 아동권리위원회 결정문에 따르면, A 중학교 조리사 B씨는 지난해 1월부터 2월 25일까지 약 50일간 같은 학교 영양사 C씨로부터 ‘매일 집에서 채썰기 연습 실시 후 사진을 카카오톡으로 확인 받으라’는 취지의 지시를 받았다. C씨는 또 다른 조리사들 앞에서 B씨에게 “손가락이 길어서 일을 못하게 생겼다” “손이 이렇게 생긴 사람들은 일을 잘하지 못하고 게으르다”고 말했다.

B씨는 이런 C씨 언행으로 우울감, 불안, 불면 등을 겪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았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B씨에 대해 ‘스트레스 상황 반복 및 증상 지속으로 업무 수행이 어려울 것’이라는 취지로 진단했다. 결국 B씨는 질병 휴직 뒤 올해 퇴사했고, 영양사 C씨를 상대로 인권위에 진정을 접수했다.

C씨는 그러나 신규 발령자인 B씨에게 ‘칼을 쓴 경험이 없으면 작업이 어려울 수 있으니 방학 동안 집에서 채썰기 연습을 해보라’고 조언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채썰기 한 사진을 카카오톡으로 보내 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B씨도 이를 승낙했다는 것이다. 또 이런 연습은 안전사고 예방, 조리업무 숙달, 위생관리 측면 등을 고려해 배려 차원에서 권유했다고 주장했다. B씨가 주장한 폭언도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인권위는 진정서와 두 사람 간 카카오톡 대화 내용, 참고인 진술 등을 종합해봤을 때, B씨 주장이 사실로 인정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C씨의 지시가 근로자의 휴식권과 일반적 행동 자유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B씨의 손 모양을 언급하며 했던 말을 두고도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인권위는 봤다.

인권위는 “B씨는 안전사고와 오염에 따른 식중독 발생 예방 등을 위해 채썰기 연습을 시킨 것이라고 주장하나, 그 방식과 언행에 있어 구성원들의 인격을 침해하거나 불필요하고 과도한 방식으로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는 업무 수행이라는 이유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했다. 폭언에 대해서는 “발언 내용이 비속어에 해당하거나 상대방의 특성을 비하하는 취지의 내용이라면 그 자체로 상대방의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있다”고도 했다.

다만 인권위는 이같이 판단하면서도 C씨가 지난 6월 소속 중학교에서 이미 퇴직했다는 점을 감안해 “재발 방지 차원에서 소속 직원들을 대상으로 본 사건 내용을 포함해 직장 내 괴롭힘 교육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