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남양주에 사는 이소의(18)양은 서울 용산에 사는 허영숙(77)씨의 ‘온라인 손주’다. 두 사람은 지난 2일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처음 얼굴을 마주한 사이다. 서울 용산구 자원봉사센터가 이달 초 진행한 ‘카톡 손주’라는 프로그램으로 인연을 맺었다. 지역 어르신들에게 중·고등학생 자원봉사자들이 일대일로 스마트폰이나 키오스크(주문 기계) 등 스마트 기기나 카카오톡 같은 애플리케이션 사용법 등을 알려준다. 이양은 온라인 화상 회의 프로그램인 줌(Zoom)으로 최근 2주 동안 4차례 허씨와 만나 대화하며 인터넷 지도로 ‘길 찾기’를 하는 방법 등을 가르쳐 드렸다고 한다. 이양은 “처음엔 어색하긴 했지만 지난주 서울에 비가 많이 내렸는데 괜찮으신지 안부를 여쭈기도 하고, 할머니는 수험 생활을 응원해 주시기도 해서 이제는 친해진 마음이 든다”고 했다.
용산구나 경기 포천시 등 지자체 곳곳에서 ‘온라인 손주’들이 지역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가 디지털 교육을 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기기 사용법을 배우고 싶은 어르신과, 봉사 활동을 하거나 관련 분야로 진학하고 싶어 하는 청소년들을 연결해 줘 서로 도움이 될 수 있어 호응이 크다. 어르신들 입장에선 단체 강의가 아니라 사실상 일대일 수업인 데다 손주뻘 학생들과 시간을 보낼 수도 있어 특히 더 반긴다고 한다. 코로나 감염 위험을 감안해 카카오톡 같은 스마트폰 메신저나 화상 통화 등을 이용한 비대면 방식이 필요해지면서 곳곳에서 ‘온라인 손주’가 등장하는 중이다.
복지관이나 주민센터 등에서 직접 학생들을 만나 일대일로 스마트 기기 사용법 등을 배우는 어르신도 많다. 한번 관계를 맺은 후에는 종종 카카오톡 등의 메신저로 대화를 주고받기도 한다.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갈월종합사회복지관에서는 후암동 주민 채길순(81)씨가 이미소(18)양과 함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키오스크 연습용 애플리케이션 화면을 이리저리 눌러보던 채씨가 “여기서 결제로 넘어가려면 어떻게 할꼬?”라고 하자, 이양이 “할머니, 감자튀김 장바구니에 추가하고 ‘주문 완료’ 누르시면 돼요”라고 알려줬다. 두 사람도 용산구의 프로그램을 통해 최근 만났다.
경기 수원에 사는 이가람(18)양은 “짝이 된 할아버지가 ‘내가 자존심이 있어서 손주들이나 청년들에게 막 물어보질 못하겠다’고 말한 게 기억에 남는다”며 “스마트폰과 키오스크 이용법을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정말 강하셨는데 노인들을 더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올 겨울에 이어 두번째 카톡 손주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호연(18)양은 “할아버지께서 젊은 시절 전국과 해외를 오가며 치열하게 살아온 삶의 경험을 말씀해주셨다”며 “지금의 삶에 감사하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열정을 느꼈다”고 했다. 이양은 “할아버지와 나중에 또 대화할 기회를 마련하자고 약속했다”며 “오래 건강하셨으면 한다”고 했다.
일본에서도 손자·손녀 또래 젊은이들을 노년층 가정에 파견해 디지털 생활을 지원하는 ‘손주 구독’ 서비스도 등장했다. 일본의 스타트업 미하루는 젊은 직원들에게 시간당 5000엔(약 4만8000원)을 지급하고, 정기적으로 노인 가정을 방문해 스마트폰이나 PC 등 디지털 기기 사용법을 알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경기 포천에서도 지난 9~10일 지역의 중학교 1학년생 12명과 어르신 12명을 일대일로 맺어 디지털 기기 교육을 했다. 사업을 담당한 포천청소년문화의집 관계자는 “어르신들이 강사 한 명이 와서 디지털 교육을 하는 것보다 학생들과 일대일로 짝지어 배우기를 더 좋아하셨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