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희 경기도교육감 당선인은 지난 7일 경기 용인 사무실에서 인터뷰하면서 “‘AI(인공지능) 튜터’ 등을 활용해 교육 대전환을 이루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른 교육 정책들이 그랬듯 경기도에서 시작하면 전국이 안 따라올 수 없을 것”이라면서 “경기도에서 교육의 세계적 표준 모델을 만들어보겠다”고도 했다. /이태경 기자

지난 6·1 지방선거로 ‘진보 교육감 전성시대’는 일단 막을 내렸다. 보수 교육감은 2018년 선거 때 17명 중 3명에 불과했지만 이번엔 8명으로 늘어났다. 진보 일색이던 초·중·고 교육 현장에도 변화가 올 것이란 전망이다. 가장 큰 변화는 경기도에서 불어올 것이란 관측이다. 경기도는 우리 초·중·고생 4명 중 1명이 살고 있다. 이곳에서 2009년 진보 성향 김상곤 전 교육감이 당선되면서 무상급식을 비롯, 혁신학교·학생인권조례 등 대표적 진보 정책들이 모두 탄생, 전국으로 퍼지면서 ‘진보 교육의 산실(産室)’로 불렸다.

여기서 직선제 도입 후 첫 보수 교육감으로 임태희(66)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당선된 것이다. 그는 “진보 교육감들은 시험에서 해방, 인권 강화 등을 외치며 혁신학교 등을 추진했는데 예산은 많이 들어갔지만 성과는 없고 오히려 학력 저하나 사교육 급등 같은 부작용을 불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무교육 기간(초⋅중)에 적어도 디지털역량·외국어·문해력·경제금융역량 등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기초는 탄탄하게 갖춰 사회에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AI(인공지능) 튜터’를 들여와 수십년간 이어온 교육 방식을 바꾸겠다”고 덧붙였다. ‘교육 2.0′ 시대에서 단숨에 ‘교육 4.0′으로 ‘퀀텀 점프’하겠다는 각오다.

진보교육 정책들 재검토 필요

-진보 교육감들이 학부모 심판을 받았다고 말했다.

“부모들은 ‘인성’과 ‘실력’이 함께 키워지길 바란다. 진보 교육감들은 둘 다 안 했다. 학교 교육이 하향평준화됐고, 학부모들은 학교 교육 대신 학원으로 달려갔다. 공부 부담을 덜고 논다고 인성이 길러지는 게 아니다. 노는 것도 잘 놀게 해야 한다. 방치한다고 아이들이 성장하는 게 아니다.”

-’혁신학교’ 정책도 비판했다.

“교육감 방침에 따라 혁신학교로 지정하면 돈을 더 주고, 안 따르면 돈을 덜 주는 건 잘못됐다. 학생 차별이다. 상당수 부모들이 반대하는 학교(혁신학교)를 만들어 놓고 예산을 더 주는 건 공정하지 않다. 프로그램도 문제다. 혁신학교가 아이들을 시험에서 해방시키고 자기주도적 학습이 가능하게 한다는데, 들여다보면 별 내용은 없고 마을교육공동체 사업, 현장학습 등에 돈을 썼다. 결국 학생들은 외부 단체가 교육 예산을 가져가기 위한 창구로 이용당한 셈이다. 그런데도 애들 교육비로 쓴다고 하니 감시나 비판도 제대로 안 받았다.”

지난 2일 새벽 임태희 후보가 경기교육감 당선이 확실해지자 꽃다발을 목에 걸고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혁신학교는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이 2009년 13곳 지정한 것을 시작으로 진보교육감 관할 지역인 14개 시도로 퍼져 나갔다. 현재 경기도 전체 초·중·고교 2445교 중 57%(1393교)가 혁신학교다. 경기도는 제도 도입 초창기엔 혁신학교 한 곳당 1억원 이상 지원했는데, 최근엔 학교 수가 크게 늘어나자 교당 4200만원(1년 차)을 지원한다.

-앞으로 혁신학교는 어떻게 할 건가.

“일단 신규 지정은 보류하고 기존 혁신학교는 전면 재평가하고 진단하겠다. 지금까진 혁신학교가 몇 개로 늘었고, 예산이 얼마 들어갔는지 ‘인풋(input·투입)이 쟁점이었다. 이젠 그 돈을 써서 뭐가 바뀐 건지 과연 효과가 있었는지 본격적으로 알아보려 한다. 혁신학교 지정 전후 부모·교사·아이들 만족도는 어떤지 조사하고, 호응이 좋은 프로그램이 있다면 더 널리 전파하고, 별 성과가 없이 돈만 쓰고 있다면 그런 학교들은 (정책을) 전면 수정하겠다. (성과가 없는 혁신학교는) 폐지할 수도 있다.”

-’9시 등교제’도 경기도에서 먼저 시작했다.

“등교 시간은 학교에 일임하겠다. 그러면 출퇴근하는 부모들이 많은 동네는 시간을 앞당길 수도 있고, 자율로 해도 오전 9시 등교를 유지하는 학교도 있을 것이다.”

미래 세대에 꼭 필요한 ‘디지털 역량’

-학교 교육에 ‘AI(인공지능) 튜터’를 도입하는 게 주요 공약이었다.

“이제 모든 게 ‘디지털’로 바뀐다. 학생들은 ‘DQ(디지털 역량)’를 키워야 한다. 교실 수업도 ‘하이브리드’(hybrid·두 개 이상 요소를 결합)로 가야 한다. 지식 전달은 AI로 하고, 선생님은 코칭만 하는 것이다. 예컨대, 학생이 디지털 기기로 공부하면 그 정보가 모두 입력돼 빅데이터가 된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게 뭔지, 좋아하는 활동과 해야 하는데 안 하고 있는 게 뭔지, 평가 결과 내 위치가 어딘지 등을 AI가 가르쳐준다. 해야 하는데 안 하는 게 있다면 AI가 하라고 할 것이고, 학생은 그걸 따라가면 된다. AI로 학생 개인마다 ‘맞춤형 공교육’을 하는 대전환을 이루자는 것이다.”

-교사의 역할은.

“AI가 해야 할 것을 제시해도 안 하는 애들이 있다. 그런 아이들에게 선생님이 ‘이 부분을 이렇게 해봐라’면서 코치해주고, 학부모에게도 알려줘야 한다. 그런 게 교사의 주 역할로 바뀌게 될 것이다. 학교에선 친구 만나고, 선생님께 코치받고 체육·실험·실습·토론 등 활동을 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시스템 구축은 어떻게 하나.

“시스템의 안정성이나 책임 소재 등을 고려해 삼성이나 KT·SK 같은 대기업이 붙어야 한다. 한 기업에 물어보니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차원에서 이미 준비한 게 있고 학교에 도입도 가능할 것 같았다. 에듀테크 사업에 진출한 사교육 기업의 아이디어도 빌려올 필요가 있다. 지금 윤석열 정부에서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추진하는데, 교육에서 가장 먼저 시작할 수 있다고 본다.”

-교육부 차원이 아닌 경기도에서 먼저 시작하나.

“경기도에서 시작하면 전국이 안 따라올 수 없을 것이다. 현재 싱가포르가 교육을 디지털로 대전환하는 중인데, 우리도 바로 도입해야 한다. 싱가포르(인구 545만명) 규모에선 세계적 표준 모델이 나오기 힘들지만, 경기도(인구 1358만명)에선 가능할 것이다.”

자사고·외고 폐지는 학교가 결정하도록

-’자사고·외고 폐지’는 어떻게 할 건가.

“강제로 없애는 건 반대다. 억지로 하면 안 되고 학교가 선택하게 하면 된다. 인구 100만명급 도시에는 자사고나 특목고를 확대해달라는 요청도 많다. 공부를 특별히 잘하는 학생들이 원하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수요는 우선 ‘공유학교’에서 흡수해보고, 그 수요가 학교를 만들 정도가 되면 그땐 학교(자사고·특목고)를 설립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공유학교’란 무엇인가.

“학교 선생님은 정규 교과 시간에 집중하도록 하고 그 외 활동은 다른 체계로 흡수해야 하는데, 어떤 방법이 있을까 고민하다 나온 게 공유학교다. 학교 교실이나 교회, 유치원 등 지역의 남는 시설을 공유학교로 지정해 다양하고 질 높은 교육을 할 수 있다. ‘음악 캠퍼스’ ‘디지털 캠퍼스’ ‘체육 캠퍼스’ 등 다양한 캠퍼스가 나오고, 학생들은 집 가까운 곳으로 가서 교육을 받는 것이다. 교사 자격증이 없더라도 전문성 있는 다양한 인사들이 교사로 나서 우수한 교육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다.”

-정부가 교육청 예산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일부를 등록금이 동결돼 예산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대학에 지원하자는 의견도 있는데.

“대학들이 주장하는 논리다. 대학은 안 가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대학에 국고를 지원하는 건 공정 원칙에 안 맞는다. 교육청 예산은 대학이 아니라 유아로 내려야 한다. 저출생 문제가 심각하니 0세부터 돌봄을 국가책임제로 가는 데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교육부, 복지부, 고용부, 여성가족부, 지자체 등이 함께 교육 돌봄 시스템 전체를 점검해서 국가가 책임지는 쪽으로 가자는 것이다. 엄마들이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두지 않도록 나라가 나서야 한다.”

교실의 이념 편향 문제 심각

-이념 편향 교육 문제도 지적했는데.

“교과서부터 심각하다. 한쪽으로 치우친 것이 대부분이고, 중심을 지키는 게 없다. 거기다 학생인권조례와 성교육도 문제가 많다. 퇴직 교사 등을 활용해 학생들이 다양한 내용을 접하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강의를 제공하겠다.”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교사들 사례도 종종 문제가 된다.

“지금까지 학생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앞으로 학생들이 균형 있는 교육을 받으면 더 정확히 (정치적으로 편향된 수업의) 문제점을 알 것이다. 학생들의 역량과 판단력을 길러줘 문제 있는 교사는 학생들이 배척해 도태되게 해야 한다.”

-시급히 추진해야 할 다른 과제는.

“교육청 관료 문화를 없애겠다. 교육청처럼 관료적인 곳을 본 적이 없다. 불필요한 서류작업이 많고 의전 문화도 구시대적이다. 앞으로 학교 현장을 지시·감독하는 게 아니라 서비스하고 컨설팅해주는 기관으로 바꾸겠다. 행정 효율을 위해 쓸데없는 조례를 정리하기 위한 특별조례를 하나 만들 수 있나 검토하고 있다.”

☞임태희

1956년 경기 성남 출신으로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0년 제24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재무부 등을 거쳤고, 16·17·18대 국회의원(성남 분당을)을 지낸 후 이명박 정부에서 고용노동부 장관과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2017~2021년 국립 한경대 총장을 거친 후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총괄상황본부장을 맡았다. 6·1 지방선거에서 경기교육감 중도·보수 단일 후보로 출마해 54.8% 득표율로 당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