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부터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 노선의 북쪽 끝은 초기 계획대로라면 고양 킨텍스여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파주 운정으로 종착역이 바뀌었다. 6.7㎞ 구간이 북쪽으로 더 길어졌는데, 이런 변경에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으로 대부분 윤후덕 민주당 의원(파주갑)을 꼽는다. 그는 처음 총선에 나섰던 2012년부터 이 문제에 뛰어들었고 “규정을 고쳐서라도 일산 킨텍스에서 수서까지 확정된 GTX 노선을 파주로 출발지를 변경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대도시권 광역교통 관리특별법 시행령’ 제4조는 구간 설정과 관련해 광역철도의 전체 구간을 50㎞ 이내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고양 킨텍스~수서 간 거리는 46.2㎞로 규정대로라면 파주시 연장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파주 연장의 첫 결실은 2013년에 맺어졌다. 국토부는 2013년 11월 ‘대도시권 광역교통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광역철도 전체 구간 50㎞ 이내 제한규정’은 ‘도시 주요 통근지역(서울시청) 기준 반경 40㎞’로 바뀌었다. 광역철도 전체 구간을 80㎞까지 건설할 수 있게 된 셈인데, 서울시청에서 파주 운정까지는 약 30㎞로 바뀐 규정을 만족시켰다.
정부가 GTX-A 노선을 파주시까지 연장하기로 확정한 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11월이다. 국토부가 파주~일산 구간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를 기재부에 요청했고 그 결과 비용 대비 편익이 1.0을 넘기면서 통과했다. GTX 노선이 변경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김포가 증명한 GTX의 휘발성
5년에 한 번 정부는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을 발표한다. 가장 최근에는 2021년 7월 5일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이 고시됐다. 2021~2030년까지의 철도 건설 추진 계획이 여기에 담겨 있다. 철도, 특히 수도권의 열차 노선은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공약이다. 지난 대선에서도 그랬다. 윤석열 대통령이 선거운동을 하며 약속한 교통 관련 공약만 100개가 넘었다. 인수위에 쏟아진 민원 중 절반가량은 교통 관련 민원이었는데 특히 집중됐던 것이 수도권광역급행철도, 즉 GTX의 확충 문제였다.
5년에 한 번씩 열차 노선를 둘러싼 쟁탈전은 큰 파열음을 낳는다. 그래도 그런 치열한 다툼의 결과로 국가철도망 안에 내 고장이, 내 지역구가 포함된다면 정치인 입장에서는 훌륭한 자산이 생긴 것과 다름없다. 파열음은 이 계획안에 포함되지 않은 지역에서 나온다. 노선을 따낸 다른 지역이 특혜라고 주장하거나, 지역 간 불균형 문제를 끄집어내며 우리 고장에도 철로가 깔려야 한다고 항변한다. 지방선거는 그런 성토의 장으로는 제격이다.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서 발표된 신규 사업 중 유독 주목받은 곳이 경기도 김포시였다. 이미 확정된 GTX-A부터 C 노선까지에서도 소외된 김포시는 서울 강남으로 직결되는 ‘GTX-D’노선을 주장했다. 하지만 계획에 등장한 ‘서부권 광역급행철도’의 종착역은 강남이 아닌 부천종합운동장이었다. 당시 이 지역의 민심이 들끓었던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김포의 반발은 소외감을 공유하고 있던 인근 지역으로 번졌다. 인천 중구와 서구에서는 김포뿐만 아니라 자기 지역도 GTX-D를 Y자 형태로 연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번 지방선거에 교통망 사각지대로 평가받던 경기 서부와 인천 지역에 출마할 거라면 GTX쯤은 과감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0대 대선에서 GTX-A의 연장, GTX-B 조기 착공과 GTX-D의 Y자 노선, GTX-E와 F 노선 신설을 약속했다. 윤 대통령 공약에 따르면 GTX-A노선은 기존 파주 운정~동탄(수서~동탄은 SRT와 같은 선로를 탄다)에서 운정~동탄~평택까지로 길어진다. GTX-C는 기존 양주 덕정~수원에서 끝나지 않고 평택까지 늘인다. 이렇게 늘어난 GTX-A와 C노선의 경우 김동연 민주당 경기지사 후보의 공약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 후보는 ‘GTX 플러스 프로젝트’를 내세워 GTX-A·B·C노선을 연장하고 D·E·F노선을 신설하겠다고 약속했다.
윤 대통령이 약속한 D노선은 ‘김포~대장~신림~사당~삼성~하남~팔당’ 라인을 기본으로 삼고 삼성에서 갈라진다. ‘삼성~수서~광주~여주’를 잇는 라인을 추가해 옆으로 눕힌 Y자 형태로 건설하겠다는 계획이다. E노선(인천 검암~김포공항~상암~정릉~구리~남양주)은 서울 북쪽을 거쳐 서에서 동으로 가로지른다.
F노선은 ‘고양~서울~부천~시흥~안산~화성~수원~용인~성남~하남~남양주~의정부~양주~고양’ 등 서울 외곽 거점도시를 원형으로 연결하는 순환형 노선 아이디어다. 반면 김동연 후보는 파주에서 시작해 ‘고양 삼송~서울~위례~광주~이천~여주’로 가는 노선을 GTX-F로 삼겠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김은혜 국민의힘 경기지사 후보는 윤 대통령의 공약을 벗어나지 않는다.
노선과 역을 둘러싼 목소리는 대통령이나 광역자치단체장 선거보다 낮은 곳이라면 보다 강하게 목도할 수 있다. GTX에서 소외당했다고 하는 곳일수록 6·1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에게 요구가 강하다. 상대적으로 소외받았다는 인천을 보자. 윤 대통령의 공약을 뼈대로 삼았을 때 인천과 밀접한 노선은 GTX-D의 Y자 노선과 GTX-E 노선이다. 계획대로라면 GTX-D의 Y자 노선은 김포~검단에서 오는 노선과 영종국제도시~청라국제도시에서 오는 노선이 부천에서 만나며 서울 강남 쪽으로 향해 삼성~하남~팔당으로 뻗는다. GTX-E 노선은 인천 검암이 기착지다.
동서남북 연장 압력 받는 노선
인천 서구청장 자리를 두고 맞붙는 김종인 민주당 후보는 GTX-D Y자 노선을 약속했고 강범석 국민의힘 후보 역시 GTX-D Y자 노선에 E노선 신설을 약속했다. 인천 중구도 비슷하다. 구청장에 출마한 홍인성 민주당 후보와 김정헌 국민의힘 후보 모두 GTX-D Y자 노선을 약속했다. 계양구청장에 출마한 이병택 후보는 GTX-D와 E노선 조기 건설을 공약에 포함했다.
시의원 단위에서도 GTX 공약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중구1선거구에 출마한 차광윤 민주당 후보는 GTX-D·E 노선에 운서역 경유를 추진하겠다고 했고 신성영 국민의힘 후보는 GTX-D Y자 노선을 공약에 넣었다. 이처럼 인천에서 GTX를 약속하는 후보들만 여야 가리지 않고 십수명이다.
이런 요구들은 인천으로 끝나지 않는다. GTX-A가 보여준 노선 연장 선례가 있었고, 새롭게 취임한 대통령도 GTX를 수도권 전역에 펼치겠다고 했다. 서울에서 먼 곳일수록 노선에서 소외됐고 그런 지방자치단체들일수록 GTX 연결을 강하게 요구할 수 있는 타이밍이 온 셈이다. 양주 덕정에서 수원을 잇는 GTX-C노선은 양 끝단 모두 연장 요구가 거세다. 남쪽으로는 화성·오산·평택시가 협약을 맺고 C노선의 평택 연장을 위해 공동 전선을 구축했다. 북쪽으로도 동두천이 연장을 요구하고 나섰다.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GTX-A노선은 동쪽으로 연장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다만 지선을 활용하는 방법인데 A노선 수서역을 동쪽으로 이어 경기도 광주~이천~여주 등으로 나가자는 요구가 강하다. 해당 지역 자치단체장들은 노선 연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여주시 관계자는 “여주의 성장동력을 위해서라도 GTX 연결은 반드시 필요하다. 서울에 30분대로 진입할 수 있게 된다면 수도권 인구 분산 효과도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지방선거에서 겨루는 상대당 후보들도 이런 GTX 유치를 반대하지 않는다.
수도권의 계획과 경쟁해야 하는 비수도권
서울과 거리가 먼 곳에서는 서울과의 빠른 직결을 위해 GTX를 호출한다. C노선의 평택 연장에 충남 천안·아산이 호응하고 있다. 김태흠 국민의힘 충남지사 후보가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와 함께 서울과 충남을 잇는 광역교통 정책 협약식을 가진 이유다. 강원도에 출마한 후보들도 GTX가 동쪽으로 더 연결되길 바라고 공약을 내걸고 있다. 이광재 민주당 후보는 GTX-A 원주 연장과 GTX-B 춘천 연장을, 김진태 국민의힘 후보는 GTX-B 춘천 연장을 약속했다.
서울과 상대적으로 가까운 곳은 강남 직결을 원한다. 앞서 언급한 인천이 그렇다. 후보자들은 GTX-D노선을 E노선보다 많이 약속한다. 지역에 따른 차이도 있지만 D노선은 강남직결성을 가진 노선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인천에서 시의원에 출마한 한 후보는 “교통여건을 개선한다는 명분도 있지만 그동안 마포나 여의도까지를 이동의 한계로 삼던 인천이 강남과도 연결될 수 있다는 건 누구에게나 솔깃한 이야기다. GTX-D에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남직결성은 주민의 자산 가치 상승과 직결된다. GTX-C 노선의 수혜를 입은 안양 인덕원과 의왕의 집값이 급등했던 사건이 상징적이다. 서울 직결성을 꾀하는 곳들 역시 마찬가지. 교통시설 확충에 관한 이야기들은 지역 부동산을 들썩이게 한다. 정치인들 입장에서는 마다할 수 없는 사업들이다.
반면 강남이나 서울과 직결할 이유가 없는 비수도권은 한정된 자원을 두고 수도권의 거대한 계획과 경쟁해야 한다. 철도망 구축에 들어가는 예산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대통령의 약속이나 광역·기초자치단체장에 뛰어든 후보들의 공약은 애초의 계획을 흔들어대고 있다.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도 ‘비수도권 광역철도 확대 사업’이 명시돼 있지만 어떤 사업을 우선 순위에 두고 돈을 투입할 건지는 유동적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원희룡 장관 체제로 출범한 국토교통부는 이미 GTX-D노선 확장과 E·F노선 신설을 위한 ‘수도권광역급행철도 확충 통합기획 연구용역’을 최근 발주했다. GTX-A노선이 연장됐을 때처럼 광역철도 지정 기준 변경을 담은 대도시권 광역교통 관리특별법 시행령 개정안도 곧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GTX 요구의 목소리를 못 들은 척하기에는 수도권은 이미 비수도권보다 많은 유권자를 갖고 있다.